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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ul 24. 2019

좋은 관계 나쁜 관계

 6시, 알람이 울린다. 출근을 위해 일어나야 마땅하다. 몸을 일으키기만 하면 내 몸은 기계처럼 출근 준비를 마칠 것이다. 십 년 넘게 해온 일이 아닌가. 그런데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매일 아침 알람을 세 번씩 끄고 다시 잠든다. 눈꺼풀이 무거워 사지는 이불속으로 녹아든다. 갈급한 잠 속에서 다음 알람을 기다리며 초조해한다. 대체 어젯밤엔 왜 그리 늦게 잤는지.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게 돼서야 가까스로 눈을 떴다. 더듬더듬 알람을 끄고, 어제 듣던 팟캐스트를 켠다. 언제부턴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난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벗 삼아 하릴없는 시간을 지탱했다. 운전하면서도, 러닝머신 위에서도 이동진은 친구 김중혁과 쉴 새 없이 떠든다. 이 나긋나긋한 이 아저씨가 뭐가 좋은지 한 에피소드를 몇 번씩 듣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추천한 책을 읽고, 그가 쓴 글을 빠짐없이 찾아 읽는다. 올해 빨간책방은 7년의 세월을 끝으로 종방했지만, 여전히 난 이동진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8시, 분주한 출근길에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앞만 보고 걷는다. 두리번거리는 나는 미세먼지 가득한 도심을 헤치는 그들이 야속하다. 아랑곳없이 나아가는 그 거침없는 행렬에 주눅 든다. 난 이 도시 어디쯤 좌표를 찍고 있나. 괜스레 지금 사는 모습에 영 자신이 없다. 잘살고 있는 걸까. 출근길은 회의를 부르는 시간이다.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물듦에도 불구하고 인파는 잦아들 줄 모른다.

 지하철에 올라타면 사람을 구경한다. 2호선 안 사람은 대부분 고개를 처박고 스마트폰을 한다. 종종 나 같은 놈과 눈이 마주쳐 서둘러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2호선에서 내다보는 한강은 다른 세상처럼 눈부시다. 이내 찡긋거리다 재차 사람 관찰을 시작한다. 예쁜 여성을 흘깃거리고, 구겨진 셔츠를 입은 아저씨의 어젯밤을 상상하는 것도 재밌다. 그러다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을 마주할 때도 있다. 난 호기심이 많은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누가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책이 뭔지 궁금하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를 빤히 쳐다보게 된다. 가끔 책 제목을 알려고 갖은 수를 쓴다. 주저앉아 신발 끈을 매는 척도 하고, 몰래 그가 편 페이지에 적힌 문장을 훔쳐보며 아는 책인지 가늠한다. 이상한 동조 의식이 생겨 책을 읽는 그를 보면 애틋한 마음을 품는다. 난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며 책을 읽는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13시, 점심시간에 짬을 내 운동을 한다. 오늘도 귀에 에어팟을 달고 쇳덩이와 씨름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체육관에 발을 디딘다. 편한 옷을 입고 운동화를 묶으면 삶이 잠시나마 단단해진 기분이다. 때론 무언가를 꾸준하게 한다는 것만으로 얻어지는 마음이 있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로테이션을 지키는 투수처럼 든든하다. 내겐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들른 체육관이 그렇다. 운동은 글쓰기와 더불어 매사에 시큰둥한 날 툭 건드려준다. 하루에 한 번 어깨를 으쓱할 수 있는 뿌듯함이다. 난 헬스장 샤워실의 형태, 운동 기구가 배치된 마룻바닥의 단단함에 수줍은 애정을 가진다. 얼굴은 알지만, 누군지는 모르는 무수한 낯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쇳덩이를 든다. 난 그들 각자의 리듬에 경애를 품는다. 표정은 누구라도 죽일 듯이 심각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그에게도 평온이 찾아오길 바란다.

 온전히 개인이 되기 어려운 일상이다. 현대인의 삶이라는 게 늘 부대끼고 서로에 생채기를 낸다. 그럴 때면 난 도시에 염증을 느낀다. 내게 체육관은 보기 드문 사유와 사색의 공간이다. 맑은 공기와 개울 드넓은 대지는 아니지만, 바벨 하나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팽팽한 긴장과 함께 정해진 세트 수를 채운다. 조용하고 단호하며 오롯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온전한 일 인분을 보장받는 시간이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느 사무실 김 대리, 저 옆 식당 주인 김 씨. 난 상상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처럼 느슨한 연대로 묶인 공동체면 족하다고. 난 체육관을 메운 이름 모를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16시, 커피를 마시니 몸에 통증이 가신다. 카페인은 온몸으로 퍼져 내 감각을 둔화한다. 점심에 무리해서 든 바벨 때문에 어깨가 결리지만, 커피를 연거푸 들이켜며 다독였다. 스트레칭하며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휙 내렸다. 여러 사진을 타고 다니다 그를 마주한다. 무수한 사진 속에서 우연한 척 그를 적시한다. 한때 함께였던 그가 아이를 안고 미소 짓는다. 누구에게나 그런 이가 있다. 살면서 맞는 여러 질곡을 옆에서 함께하는 이. 도무지 잡히지 않는 절대적 명제 앞에서 우두커니 멀어진 이. 그는 고독하고 혼자에 익숙한 사람이다. 늘 말을 걸면 확고한 제 주관을 내게 털어놓는다. 난 그 입매를 보며 동경했고, 그를 향한 글을 쓰며 내 사고를 탓했다. 그런 사람은 잘 나타나지 않고, 찰나로 느껴지게끔 부지불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를 생각하다 퍼뜩 화면을 끄고 다시 보고서에 집중한다. 난 내 자투리 시간을 앗아가는 인스타그램과 나쁜 관계를 맺고 있다.

 19시, 퇴근길은 때론 숨 막히게 불쾌하다. 도로는 들끓고 더위와 미세먼지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장 처참한 건 내가 피할 곳이라곤 스타벅스뿐이라는 점이다. 삼각지역에서 효창공원 쪽으로 걷는 도로가 좋다.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골목이 굽이굽이 나 있기 때문이다. 골목을 걸으면 어릴 적 살던 안양 구석진 동네가 떠오른다. 수많은 잡동사니가 숨겨진 마을 생김새가 그립다. 이제는 재개발로 사라진 동네는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사진이라도 좀 찍어뒀으면 좋았으련만. 난 그 녹슨 동네가 좋았다. 아이들이 골목 구석구석 숨어있고, 거리마다 한숨 돌릴 여력을 발견했다. 요즘처럼 집을 나서자마자 차들이 뿜는 매연에 노출되지는 않았다. 도시는 골목을 뭉개버렸고, 그 결과 휑뎅그렁한 도회지만 남았다. 일률적으로 구획한 빌딩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잦아들게 한다. 도시는 번듯한 얼굴로 꾸며 합리의 틈새에 기생한다. 땀에 흠뻑 젖은 셔츠를 풀고, 칼칼한 목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털어넣었다. 지금으로선 이거뿐이다. 난 스타벅스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22시, 또 잠이 안 온다. 오늘도 왓챠 플레이를 켜고 추억의 명화를 드문드문 본다. 영화 <애니 홀>에서 우디 앨런은 말한다. “인생에는 외로움과 고통, 괴로움 그리고 불행이 가득하지만, 그 순간조차 순식간에 지나간다.” 우디 앨런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인생이 암울하고 고통스러우며 악몽 같고 의미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기만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난 우디 앨런이 가진 예의 그 냉소적인 말투에 호감을 가진다. 그가 견지하는 별거 없다는 식의 화법은 유유히 무참한 현실을 비껴간다. 나 역시 망상을 통해 현실과 괴리되는 요령을 익혔다. 요령부득한 일과에 빗금을 치고, 불현듯 틈입한 뼈아픔에 딴청을 피우고 산다. 요즘은 여행 철이라 스카이스캐너를 펴고 휴가지를 떠올리며 내일을 망각한다. 낯선 도시를 걷는 내가 보인다. 상상은 잠시고 또 자정을 넘어섰다. 불을 끄려고 보니 베개에 눅진 자국이 남아있다. 내일도 녹록지 않을 참이다. 난 내 잠을 훼방 놓는 왓챠 플레이와 나쁜 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 강원도의 힘 스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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