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Nov 06. 2019

빛의 호위

하나의 빛

 난 문장에서 어떤 상징이나 은유를 발견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저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려 애씀으로써 사고를 확장한다. 내 구태의연하고 틀에 박힌 일상이 전혀 다른 양상을 가진 허구의 세계에 포개지며 색다른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적어도 일상에서 불시에 찾아든 딜레마를 문학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는 브론스키와 만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책을 꺼내 든다. 그녀는 소설을 읽었고 무슨 내용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읽는다는 것, 즉 책에 쓰인 타인의 생활을 뒤따라간다는 게 왠지 모르게 불쾌했다. 그녀는 당시 무엇이든 직접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브론스키가 남긴 채취와 제스처를 거역할 수 없었다. 헤아릴 수 없이 긴 벌판을 가로지르는 기차에서도 마음이 밀접해진다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현현한 욕망이 발현하자 책이라는 간접 경험은 시시하게 보일 수밖에. 소설을 읽는 행위는 가상의 인물을 따라 낯선 풍경에 발을 디디는 경험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실제가 눈앞에 아른거리면 소설은 그저 일차원의 가상에 머문다. 실감이 없으니 무력한 마음에 시달린다.


 독서가 가진 한계를 인정할 때 전에 없이 삶이 허탈해진다.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쓰며 창밖을 보면 갇혀있다는 느낌에 속이 부대낀다. 일상은 비좁고 편협하다. 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동경하면서도 글을 쓰는 자신이 버겁다. 나를 벗어나려 해봐도 사무실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럴 때 난 내리쬐는 빛을 낯에 담는다. 겨우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일상의 보호막이다. 나의 무기력을 따사로이 비춰주는 빛의 호위에 몸을 맡긴다. 아스라이 떠오르는 과거를 비추는 빛의 가능성이 나를 머금는다.





작가의 이전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