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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16. 2019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난 세상을 회의한다. 세상 꼴은 늘 실망스럽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란 애당초 없다. 우후죽순 나오는 사회과학서 역시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 특히 인간 사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맘을 앙상하게 한다. 누군가는 사람 사이에 서서 힘을 받는다는데 난 부대낌에 눈 둘 곳을 찾지 못한다. 개인주의가 사회적 가치로 떠올랐지만, 세상은 온갖 관계로 점철됐다. 난 인간 사이에 서면 피곤함에 시달린다. 쓸데없는 술자리에 불려 다니고 상대의 감정을 살피느라 감정을 소모한다. 그런 질척임은 직장만도 벅차다. 이럴 땐 파스칼이 읊조린 말을 떠올린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6시 퇴근 후까지 고독할 수 없다면 나를 정리할 시간은 대체 어디서 찾을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산책할 수 없다면 매일 밤이 기껍지 못할 것이다. 관성으로 말미암아 달력을 넘겨도 숫자 외엔 바뀌지 않는다.


요즘 누군가는 인맥 다이어트에 힘쓴다고 한다. 형식뿐인 지인을 줄여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만 주위에 둔다. 난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인맥은 저축성 예금이다. 실제 필요한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원금 보장도 안 되는 상품에 월급을 쏟느라 하루를 잃을 순 없다. 보험처럼 불안을 파는 시장에 불과하다. 카뮈는 행복하여지자면 주변 사람에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조금 뒤틀어, 행복은 내가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관계에 머물 때 찾아온다고 떠벌린다. 사실 연인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바삐 돌아간다. 가족 챙기느라 골치가 아프다. 사회생활이 만들어준 관계를 유지하는 데만도 피로하다. 난 타인과 모욕을 주고받는 걸 방지한다거나, 그걸 딛고 일어서는 묘수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모멸을 피해 달아난다. 지속적이며 끈질기게 인간을 괴롭히는 타자들은 그 자체로 지옥이다. 우후죽순 모욕이 엄습하는 순간을 견디고 또 견뎌야 할 터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난 오로지 한적한 거리를 떠올린다. 관계의 사슬을 걷어내고 이어폰을 꽂으며 홀가분해 한다. 각자 조금씩 멀어지고  힘들면 도망쳐야 한다. 세상은 도통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관계들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서로를 침범하며 죽고 못 사는 관계 말고,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다정한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족하다. 아늑한 방에서 몸을 추스르며 서로를 마다한다. 그러다 조금 멜랑콜리해지면 다시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으면 그뿐이다. 요즘 그런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얘기하며 거리 두기가 가진 아늑함을 알아가고 있다. 모멸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피해야 하는 저변에 불과하다. 괴테의 말처럼 영감이란 오로지 홀로 얻을 수 있는 귀한 보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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