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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22. 2019

왁자지껄 군중을 스치다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저

 한 남자가 길을 걷는다. 주위로 잡다한 물건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그는 왁자지껄 떠드는 남자들이 눈에 거슬린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유유히 스치며 바삐 돌아가는 세상을 관조한다. 마치 투명망토를 걸친 것처럼 쓱쓱 잘도 군중을 스친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한적한 공원이 보인다. 나무와 풀이 건재한 그곳만큼 남자의 마음을 끄는 공간은 없다. 말끔히 빗어 넘긴 머리와 새하얀 피부. 그의 문약함은 짐짓 이곳과 잘 어울려 보인다. 그는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도 하지 않고 돈이나 낭비하는 한량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하다 못해 짐짓 당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세상을 한껏 낮춰보는 눈빛으로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또박또박 걸어간다.


  남자를 상상하며 글을 썼다고민하며 뭔가를 적었는데 마치 이틀은  것처럼 시간이 더디 흐른다새벽 2시까지   했던가 마시던 커피를 마셨고나쓰메 소세키의 책도 읽었어새로 읽기 시작한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생각보다 진도를  뺐네 책에서 베토벤 9 교향곡에 얽힌 일화들을 읽고 종일 4중주의 연주를 들었다베토벤은 청력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무대에 올라 엉터리 지휘를 했다. 난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쿵쿵 울리는 베토벤 교향곡을 들었다. 한껏 고양된 기분에 다시 소세키의 <그 후>를 펼치고 소설 속으로 빠져든다.


 1909년 작 <그 후>는 일도 없이 유부녀나 만나는 다이스케가 주인공이다. 아버지는 다이스케에게 간곡히 정략결혼을 제의한다. 어차피 네 맘에 드는 여자는 지구를 통틀어도 없을 것이다. 결혼해도 지금처럼 놀 수 있게 해 줄 테니 양갓집 규수와 결혼해라. 하지만 아들은 고개를 쳐들고 매몰차게 거절한다. “곤란한 일입니다.” 다이스케는 아름다움 앞에서 무력한 인간이다. 그는 미적 감각이 생에 미치는 영향을 신봉한다. 매혹 앞에서 적당히 하는 타협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을 뒤엎을 미혹에 저항할 마음이 없다. 그것이 비단 수렁에 빠지는 일이라도 병적인 탐미엔 도망칠 구석이 없다.

 소세키의 세계는 급변하는 세계를 스치는 한 남자의 수수방관식 필담이다. 자본 중심의 사회. 급격한 변화. 서구식 연애관의 등장. 파괴되는 개개인의 모멸을 피해 오직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남자. 소세키는 젊은 시절 일본 문부성의 지시로 영국에 유학을 한다(1900년 10월). 일본이 서구의 문물과 근대화를 도입하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동안 심리적 압박도 컸을 것이다. 거기에 서구 문화를 접하면서 과도한 노이로제에 정신이 위태로워졌다. 1902년 일본 외무성에 ‘나쓰메가 미쳤다’는 전보가 날아왔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문불출한 체 하숙방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화두 삼아 글을 썼다. 소세키 작품의 화자라고 불리는 인간들을 죄다 비슷한데, 추측건대 그건 소세키의 에고가 투영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탄탄대로의 생을 살아온 소세키는 작품을 통해 속에서 들끓는 전복의 욕구를 발현한다.


평소 틈만 나면 삶의 밀도에 관해 고민한다. 허송세월을 보낸다고 생각지 않지만, 시간이라는 틀에 매여 나를 소모하는 느낌에 진저리친다. 일과는 늘 부대끼고 구차하게끔 하니까. 그렇다고 소세키의 화자처럼 ‘밥벌이 문제로 자신을 스스로 더럽히지 않은 고귀한 인간’이 되고픈 건 아니다. 어느 정도의 균형을 가지고 일상을 마주할지가 중요하다. 요즘처럼 빽빽한 시간을 보낼 때는 소세키의 소설처럼 느슨해지고 싶다. <그 후>를 읽으며 마음에 드는 페이지는 과감하고 접어두고, 가독성을 높이려 무차별적으로 밑줄을 그었다. 마치 수첩처럼 이러저러한 메모를 남긴다. 책은 그냥 스치는 거니까 과감하게 망가뜨린다. 침대에 누워 복잡한 속된 일상을 뒤로하고 소세키의 세계를 상상했다. 유유히 스치는 남자. 어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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