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Nov 28. 2019

통속과 패턴을 드립하다

핸드드립 커피전문점에서

매일 출근하듯 동네 핸드드립 전문점을 찾아 노트북을 편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허기지면 값비싼 샌드위치로 때운다. 카페 샌드위치는 누가 이렇게 규격화하기라도 했나. 왜 이리 작을까.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관용어를 실감하며 입맛을 다신다. 오전 내내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 가까스로 일어났다. 카페에 앉아서야 비로소 기운을 차린다. 오늘은 뭐라도 적어야 한다는 초조함만 급히 챙겨 나왔다. 카페에선 무참히 얼굴을 구겨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난 이런 열광적인 무관심에 마음이 놓인다. 고독은 애써 그걸 부정할 때 궁지에 몰린다. 그냥 받아들이면 공허한 안도가 찾아온다. 항상 날 오해하는 타인일 냥 밀어 두고 순전히 화면만 보고 키보드 질에 몰두한다. 서로 잘 모른다는 말 없는 실토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난 눈치채지 못하게 이름 모를 타자를 관찰한다. 회색 소음이 웅성거리는 카페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는 셈이다. 글이 풀리지 않아 카페 통유리를 응시한다. 창밖은 무구한데 정신은 산란하다. 도통 집중을 못 해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가 돌아간다. 답답함에 뱉는 숨이 거칠다. 몸을 의자에 기대곤 날 선 생각에 젖는다. 냉소적인 문장이 서툰 글자로 뇌까려진다. 알만하다 이런 뻔한 글. 카페는 뭔가에 골몰한 인간의 집결지다. 지금 막 우산을 털며 카페 문을 연 미인을 지켜본다. 그녀를 기틀 삼아 뭔가를 적어볼까. 잘 쓰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백스페이스를 연속으로 때린다. 글자가 지워지면 다시 무책임한 공백이 백지에 덩그러니 놓인다. 그새를 못 참고 깜빡이는 커서가 날 옥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문장을 두고 볼 순 없으니까. 슬슬 주인 눈치가 보여 커피 한 잔을 더 시켰다. 소심한 놈. 요즘은 쓰지도 않으면서 검색창으로 인정과 투쟁한다. 승산 없는 게임인 줄 알면서도 누군가의 격려를 기다린다. 하지만 댓글난과 '좋아요' 수는 그대로다. 이거 꼴이 우스꽝스럽네.


한때 소설 창작 수업을 들었다. 당시 소설가 선생은 날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한 마디로 무구한 놈, 땅 짚고 헤엄을 치던 무뢰한. 현학적인 낱말로 도배하면 있어 보인다고 믿었던 바보. 꽤 잘 팔리는 소설을 몇 권 펴낸 작가 양반은 동네 똥개 보듯 날 한심하게 바라봤다. 내게 당시 예술이란 자기를 자신에게 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착각하며 무책임한 감상에 빠졌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게 쿨한 줄 알고 적었다. 선생은 그런 날 가혹하게 깠다. 난 그가 가진 인텔리 특유의 삐딱한 태도가 싫었고, 당시 실연으로 뒤틀린 마음이 콤플렉스로 표출됐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은 나 자신조차도 상종하지 못하게 했다. 거울을 볼 수 없었다. 누추한 몰골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야말로 중이염을 앓는 중 2병 소년처럼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꼴이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건 평소라면 홀가분한 일일 테지만, 일정이 텅 비면 예기치 않은 자기 연민에 시달린다. 고독은 제 의지로 고립될 수 있어야 비로써 거머쥘 수 있다. 당시 난 누가 보더라도 주류에서 밀려난 한물간 아저씨일 뿐이었다. 세상엔 지루한 놈뿐이니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도 괜찮다고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난 카페에 앉아 태연하게 과테말라산 드립 커피를 마셨다. 그러면 뭐라도 나아질 것처럼.


예술과 달리 일상은 통속과 패턴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게  편하니까. 유사 이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듯 일상 마디마디엔 우연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통속이 자리한다. 소설 내러티브는 차마 진부함을 두고 보지 못하겠지만,  삶은 항상 미지근한 통속을 받아들인다. 반복이 무의미로 수렴하는 권태. 야멸찬 알람 소리와 식은 커피에 진저리 치는 패턴의 세계.  그걸 어떻게든 글로 적으며 빙빙 돈다. 뻔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감싸고 있는 통속과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젠가 홍상수 영화에서  남자는 작위와 형식 없이 이야기는 바로   없다고 제자를 닦달하더라. 그의 단언엔  패배해왔던 예술가의 어둠이 있었다. 그래서  타협하는 의미에서 통속을 멸시하기보단 오히려 인정하는  택해야 했다. 패턴 안에 머물며 지루한 인간이라는  인정할 수밖에. 그런 글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물밀듯 허기가 밀려와 혼자  먹기 좋은 식당을 찾았다. 웅성대는 산악회 무리에 치여 먹고 싶은 생선구이를 놓치고 내쫓기듯 거리에 나선다.  나도 모르게  욕을 뱉곤 근처 순대국밥 집으로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 망상에 시달리는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