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Mar 15. 2020

우리는 이미 독극물을 담고 산다

영화 <다크 워터스> Dark Waters, 2019

처음 '토드 헤인즈'와 만난 날


 객석이 환해지고 긴장이 풀리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정류장을 향해 걷는 발걸음이 내내 무겁다. 어딘가 앉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몇몇 장면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생각이 딴딴히 굳어 지끈거리기까지 하다. 당도한 버스를 외면하며 한 정거장 정도는 너끈히 걷는다. 몇 분이나 걸었을까. 결국, 역 근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집에 둥지를 틀고 노트북을 편다. 막차가 몇 분 남지도 않았는데 우선 뭐라도 적기로 한다. 그런데 막상 커피를 앞에 두고 흰 공란을 보니 막막한 기분이다. 당이 떨어져서 그런가, 케이크라도 시켜야 하나. 몇 번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지만 못마땅해 속이 상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 책을 더 읽었어야 했어. 대단한 걸 보긴 봤는데 내 볼품없는 글로는 헤아릴 수 없다. 그렇다고 실망하진 않기로 하자. 며칠쯤 지나면 감상이 해묵은 김치처럼 무르익을지도 모른다. 우선 당을 좀 섭취하면 들뜬 기분이 잠잠해지며 입 밖으로 나온 말이 가지런해지겠지. 몇 번의 사색을 거쳐 미약하게나마 그때 그 감상에 근접할지도 몰라. 잠시 머무른 동네와 자주 걷던 집 앞 풍경이 모여 얼개가 그려지고, 긴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단단한 생각을 품게 되겠지.

 그날도 그랬다. 영화 <아임 낫 데어>를 보고 나오던 그 날 저녁은 투명에 가까운 날씨였다. 영화관을 들어가기 전과 내가 완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시인처럼 풍류를 읊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밥 딜런의 인생을 파편화해 그려낸 영화 <아임 낫 데어>는 서사가 느슨한 가운데 유려한 낭만이 그득해서 어렵지 않게 내 기억을 녹여낼 수 있는 영화였다. 불투명한 상상이 물미역처럼 칭칭 나를 동여맨 느낌이 좋았다. 이후 며칠간 주문에 걸린 것처럼 토드 헤인즈 작품 목록을 훑어 내려갔다.

 토드 헤인즈 영화는 마치 이천 년대 초 홍대 뒷골목처럼 혼란 그 자체다. 단정하고 개운한 장면은 눈을 씻고 찾을 수 없고, 들끓다가 종국엔 사라지는 자취를 좇는다. 변화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진자 운동하듯 오가다 어느새 먹먹한 기분에 휩싸인다. 세상은 변화의 연속인데 변하지 않는 건 얼마 없다는 건 상실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토드 헤인즈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회한에 빠져든다. 이제는 도통 어쩌지 못할 기억이 라면 건더기처럼 배수구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래서 토드의 작품은 늘 보기가 부담스럽고, 관람 후에도 정리가 안 되는 느낌에 시달린다. 내가 한창 갈피를 못 잡고 살 즈음 그를 만났고, 내내 그가 만든 혼돈에 휩쓸려 다니면서도 변사체로 발견되지 않은 건 행운에 가깝다. 난 여전히 강물 어귀에서 토드 헤인즈가 만든 흐름을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혼돈을 기꺼이 수용하는 방식으로 사는 법을 터득했다. 아니 오히려 서글픔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더 토드 헤인즈 영화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기분을 안겨주는 영화는 알다시피 흔치 않다.


다크 워터스, 토드 헤인즈 감독


 며칠 전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 <다크 워터스>를 관람했다. 개봉 일에 맞춰 관악구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전염병의 여파로 객석은 듬성듬성했다. 영화가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물질을 무차별적으로 퍼뜨린 거대 기업에 관한 스토리라는 점에서 꽤 시의성 있는 소재였음에도 관심은 차가웠다. 집단 감염의 여파에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영화가 바이러스 때문에 관객이 들지 않는 상황은 알 수 없는 허탈감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헐크로 유명한 마크 러팔로가 주연이다. 그는 세계 최대 화학 그룹인 듀폰을 상대로 이십 년 넘게 법정 투쟁을 이어가는 변호사 롭 빌럿 역을 맡았다. 재밌는 사실은 마크 러팔로가 과거에도 듀폰가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영화 <폭스캐처>에서 듀폰가 4대손이자 미국 레슬링협회 후원자였던 존 E. 듀폰의 총에 머리를 관통당한 바 있다. 방대한 사유지를 소유하고 거대 저택에서 고답적인 생활을 하는 거대 기업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그들에게 인류란 그저 수치적인 실적과 수직적인 계층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다크 워터스>는 기업 문화가 지닌 보편과 동떨어진 야만적인 면모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기업 법무 변호사 롭은 어느 날 회의 중에 회사로 찾아온 고향마을 농부의 제보를 받는다. 농부의 주장에 따르면 듀폰사가 롭의 고향 마을에 대량 독성물질을 방류 중이라고 한다. 처음에 롭은 농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실제 마을을 찾아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후에 실감한다. 롭은 조사를 진행하며 농장에 방류된 물질이 PFOA라는 독성 폐기물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심지어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용품 곳곳에 이 물질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알고 경악한다. 이미 듀폰사의 제품이 전 세계 시장에 수출된 상태라 손써볼 도리가 없는 상태다. 영화는 롭이 20년 넘게 듀폰사와 벌이는 소송전을 좇는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언론에서 다룬 바 있지만,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엔 맥락이 지나치게 복잡하다. 게다가 영화가 내내 스펙터클 없이 오직 서류로 고뇌하는 게 전부라 보는 이마저 지치게 만든다. 그건 마치 우리 세계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부연과 같다. 그래서 영화는 정보를 축약하고 사건의 맥을 짚는 데 집중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지난 작품이 의미를 건져내는 스토리텔링과 거리를 뒀다면, <다크 워터스>는 기존과 선명한 연출 시사점을 가지고 사실에 육박한다. 절체절명의 사건인 만큼 스타일을 최대한 죽이고 시종일관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태를 직시한다. 마치 영화 <괴물>에서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하는 장면처럼, 영화는 흐르는 물을 통해 악성 독극물이 우리 인체로 스며드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듀폰이라는 거대 기업은 국내 모기업과 이름을 바꿔 써도 별반 다르지 않은 무형의 산물이다. 우리는 늘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사용하지만, 정작 그 실체는 번쩍번쩍한 광고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초대형 로펌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은 법의 테두리 밖에 기생하고, 그 과정에서도 독성 물질은 쉼 없이 인류의 혈관을 따라 흐른다. 우리는 변호사 롭의 선의를 알지만, 그거 어찌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하며 영화를 본다. 비이성적인 행동을 일삼는 불특정 다수는 여전하고, 악은 매끈한 형태로 우리 곁에 기생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이해할 수 없는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