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식탁
오늘은 어려운 자리가 있었습니다. 전 서른 중반의 사회인답게 교양을 차리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죠. '아 그러셨구나' 따위의 말을 건네면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누군가의 고충을 듣는다는 건 아무리 해도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제가 뭐라고 타인의 고통에 말을 보태겠어요. 사실 그냥 듣고만 있다가 적절한 위로를 건네는 것 정도는 꽤 능숙하게 해냅니다. 근데 지금 제가 앉은 위치가 그의 고난에 뒷짐 지고 있을 수는 없는 자리라서 어쭙잖은 말을 보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어쩌지 못한 표정을 마스크 뒤로 숨기고 손가락을 비비 꼬면서 초조한 위로를 건넸습니다. 마치 코드를 뚝딱 짜내는 프로그래머처럼 쉬운 답을 제시했습니다. '자 이게 당신을 위한 해법입니다.' 나조차도 믿지 않는 얘기를 하며 그를 납득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럴 때 보면 의례라는 건 참 편한 관습인 것 같습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비슷한 답을 제시하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속이 서걱거리는 것까진 막을 순 없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변명을 할 뿐입니다. '나한테까지 들고 온 문제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어. 적당히 넘겨도 제 처지를 이해해줄 거야. 그 정도 고민은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닌가 왜 그렇게 요란을 떨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어쩌면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저는 들을 마음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급히 결재받아야 할 문서가 있었고, 수술을 앞둔 어머니에게 전화도 드려야 했거든요. 참 구질구질한 변명입니다.
상담을 청한 그는 최근 지방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생활 전반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저녁이면 외롭고, 그래서 술을 퍼마셨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밤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것입니다. 한국은 잠들지 않는 밤의 제국이니까요. 전 가끔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소돔과 고모라를 알고 싶으면 새벽 네시에 홍대 거리를 걸어보면 된다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다들 잠들어도 서울의 밤은 그와 놀아주니까 외롭지가 않았답니다. 그러다가 그는 의도치 않게 허튼짓을 했고, 다음 날 술 냄새를 풍기면서 출근을 했습니다. 주변 동료들이 그에 관한 소문을 내기 시작했고, 회사 안팎으로 문제가 드러나버렸습니다.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 일을 하고 퇴근하니 다시 우울감이 차올라서 밤만 되면 술을 마셨고, 그렇게 밤거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팀장은 일에 진척이 없는 그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고 그래서 그는 오늘 제게 전근 희망 신청을 한 것입니다. 마치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내용 같지 않나요. 술 구덩이로 들어가서 어쩌질 못하는 게 꼭 닮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위로가 되는" 롤빵이 없었죠. 전 빤히 후회할 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그가 회사를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럽다면 굳이 아침마다 왜 출근을 하는지 의아했거든요. 그렇다고 주류도매업을 하라는 떠밀 순 없으니 아무 말도 못 하고 커피만 마셨습니다.
그의 요구사항은 분명했어요. 다시 서울로 발령을 내달라는 거였습니다. 본인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고집을 피웠습니다. 나이가 몇 갠데 자꾸 억지를 부리니까 저도 점차 짜증이 치밀었습니다. 제가 김난도 선생님도 아닌데 다 큰 어른을 달래야 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 보겠다고 말해줬습니다. '우선, 제가 검토를 좀 해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 볼게요.' 이런저런 신경을 써주겠다는 약속을 얹었지만, 그의 얼굴은 잘 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의례적으로 말한 게 다 티가 났나 봅니다. 제 앞에서 신음하는 그를 더는 보기 싫어서 마치 드라마 속 실장님이라도 된 것처럼 차갑게 굴었습니다. 오직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한 인사치레가 더해졌고, 전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뒤늦은 낭패감에 몸을 떨었습니다. 저도 지금 지방에 와서 힘든 상태라서 사실 그와 비슷한 상태였거든요. 그에게 심리적인 도움을 주기엔 역부족인 상태였습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에게 역으로 신세 한탄을 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매뉴얼대로 해야 하는데 저까지 동화돼서 서로 위로해주는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죽는소리에 죽는소리를 보태면 울음 없이도 극심한 슬픔이 느껴집니다. 저도 최근 여차여차 힘든 참인데 임자 만난 셈이죠. 그도 어안이 벙벙해서 저를 다독여주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소설로 쓰면 대박이 날 거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전 상담 시간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지만, 속상함에 심취한 저를 막을 순 없었습니다. 그는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제 컵에 커피를 따라줬어요. 그는 아차 싶었는지 되도록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어 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면담을 끝났습니다. 그는 제 얘기를 다 듣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상담 결과를 적는 공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지금 서울로 가고 싶어 하여 인사이동을 원하고 있다. 추가적인 관심과 관찰이 필요하다.' 그가 나간 후에 다시 보고서를 쓰려고 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서 소파에 몸을 묻고 잠시 졸았습니다.
요즘 누가 사무실을 똑똑 두드리고 들어오면 점점 더 대화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전 손님이 나가지 못하게 얼른 손짓으로 소파에 앉히고는 재빨리 원두를 갑니다. 전완근을 쓰면서 엄청난 속도로 2인분의 드립 커피를 내리죠. 손님이 찾아와서 커피라도 한잔해주면 몇 마디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전 손님을 붙잡고 어제 뭐 드셨는지부터 따지고 들어갑니다. 어떻게든 재밌는 대화를 만들려고 과한 리액션으로 그를 당황시킵니다. 기회다 싶어서 속에 담아뒀던 얘기를 다 꺼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제 사무실을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적어졌습니다. 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걸까요.
저는 출근길에 세상이 외로운 이들로 가득하다는 걸 느낍니다. 그들의 얼굴엔 어제의 취기와 오늘의 후회가 짓이겨져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를 만나지만 가슴에 불을 피우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사무실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료들을 보면 외로움과 고독이 코끝에 맴돌고 있는 게 다 눈에 보입니다. 결혼했든 아이가 있든 노총각이든 개랑 단둘이 살든 그건 무관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라, 어제 보낸 톡창에 '1'자가 지워지지 않아 한참을 뜬눈으로 지새웠어요. 미련 없는 이별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오늘은 제가 고립되어 명백히 아플 때 그가 한 번도 내 쪽을 바라봐주지 않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비릿한 감정에 시달리다 잠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다 깨어도 목구멍은 포도청이라 제때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습니다. 일이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제 쓰던 보고서를 켜고 십 년을 쓴 가닥으로 당연한 소리를 있어 보이게 만드는데 공을 들입니다. 이력이 났지만 이런 일이라도 없었다면 저는 무너졌을 겁니다. 커피를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문서를 결재하고, 온갖 잡념의 비빔밥이 머리를 떠다녀도 능숙하게 오타를 체크해냈습니다. 회의 시간엔 마스크 뒤로 표정을 숨기고 떨어지는 집중력을 다잡기 바빴지만 잘 버텨냈습니다.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무실 김 대리 이 사원 모두 같은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버틸만합니다. 동료들은 아침에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다가도 마주치기만 하면 밝은 목소리로 좋은 아침이라고 대꾸합니다. 그런 게 직업윤리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그러다 퇴근시간이 오면 다시 환희 만개하는 미소를 짓고 헤어지는 겁니다.
그 소설 기억나나요? 거 왜 <1인용 식탁>이란 단편 소설 있잖아요. 그걸 쓴 윤고은 작가가 최근에 <밤의 여행자들>이라는 소설로 영국 추리문학상인 대거상을 수상했습니다. 우린 윤고은 작가가 쓴 <1인용 식탁>이라는 단편을 연극으로 만든 작품을 공연장에서 함께 봤었죠. 정말 오래간만에 본 연극이었습니다. 그때 무대에서 분주하고 열띤 움직임을 펼치는 배우들에게 힘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그들은 딱 봐도 젊은 배우들이었고,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공들였을지 알만하더라고요. 연극은 '혼밥' 노하우를 전수하는 학원에 등록한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였습니다. 근데 전 연극 내용보다 여럿의 젊은 배우들이 이 작품을 위해 동고동락했던 시간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제목은 1인용 식탁이지만 아마도 저들은 연습이 끝난 새벽마다 왁자지껄하게 술판을 벌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해장국을 먹고 또 연습하고 얼마나 재밌었을까 부러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 무슨 동아리나 멀티플렉스 극장 알바처럼 동년배들이 모여서 하는 걸 해본 기억이 없는 사람입니다. 늘 혼자만 해온 것 같습니다. 심지어 직장 생활을 하는 요즘도 거의 혼자 놉니다. 비단 이런 제 생활태도를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요즘엔 뭐가 그렇게 삐걱거리는지 몰라도 공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1인용 식탁>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은근히 따돌리는 동료를 피해 회사 반경 오백 미터 너머의 허름한 식당에서 내키지도 않는 메뉴를 시켜먹습니다. 벽만 보며 급히 밥을 입에 털어놓고 나오는 모습이 꼭 사회초년생 때 저 같았습니다. 지금은 나름 혼밥 고수라 자부하지만, 그땐 주위 눈치를 얼마나 봤는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혼자 먹던 시간이 쌓여서 밥을 급히 먹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눈치 안 보는 척하면서 실은 엄청나게 혼밥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연극처럼 식당 가운데 앉아서 떡하니 1인분을 시켜 먹곤 합니다. 저도 사회인으로 가닥이 생겨서 능숙한 배우처럼 연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가끔 혼자 장어구이도 시켜 먹을 만큼 낯짝이 두꺼워졌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 우리가 곱창을 먹었던가요. 종로 무슨 시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전 혼자 밥 먹으러 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다음 약속도 있었던 당신이 같이 먹자고 보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날씨가 오늘처럼 참 좋았었네요. 청계천 물도 맑고,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날 걸었던 화사한 길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