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글이 삶이 되는 순간

'쓰기'라는 생명줄이 당신 앞에도 있습니다.  

쓰기 선생님께

우리는 길고 가느다란 끈을 서로 잘 붙잡고 있나요? 그 끈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굵어졌나요? 당신이 믿어줬던 제 내면, 튼튼하고 견고하다고 했던 제 내면의 에너지는 지금 어떤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어떤 색을 띠고 있는지, 힘은 강력한지, 금세 방전되지는 않는지, 남을 다치게 하지는 않는지, 혹 누군가에게 한 줌 햇살이 되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당신을 만난 게 언제였을까요?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게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반 강제적으로 일기를 쓰던 국민학교 또는 중학교 시절이었을까요, 책을 읽다 마음에 꽂힌 문장을 공책에 옮겨 적던 때였을까요? 먹고살기 위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던 때에 당신을 만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블로그에 차곡차곡 글을 쓰던 어느 날이거나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엇이라도 읽고 쓰던 시간, 어쩌면 세상의 차가움과 일상의 무료함에 지쳐 마음이 비틀어져 있던 때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한순간이 아니라 제가 무엇이라도 쓰던 그 모든 순간에 당신은 제 어깨 위에 있었던 게 아닐까요. 

너무 오랫동안 당신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왜 몰랐을까요?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제 곁에 있던 당신을요.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도 노력하고 싶은 것도 없다 싶을 때, 그때서야 당신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제 앞에 놓여 있는 가느다란 끈도요. 당신은 긴 세월 동안 그것을 붙잡고 제가 잡아당겨주기만을 기다려 왔죠. 미안합니다. 그게 생명줄이자 삶의 줄이라는 것을 몰라봐서요. 제가 무엇이라도 쓸 때마다 그것은 삶이 되었고 나를 채워주는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에너지는 사용하면 줄어들기 때문에 꾸준히 채워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 곧 삶의 동력이 되더군요. 

이오덕 선생님은 글쓰기가 삶을 가꾼다고 했습니다. '정말 좋은 말이다. 나도 글을 쓰면서 삶을 가꿔나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삶을 가꿀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당신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아무거나'라는 메뉴를 제게 내놓았습니다. 아무거나. 

네, 저는 당신이 제시한 메뉴를 받아 아무거나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신과 제가 잡은 줄은 그때부터 조금씩 살을 더해가 이제는 제 눈에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제법 튼튼해 보이더군요. 하나의 줄을 완성하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처럼 '쓰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건네 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난 쓰기 선생님을 그들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저는 오늘도 당신과 맞잡은 '쓰기'라는 줄에 리듬을 실어봅니다. 그곳에서 나는 소리가 멀리 혹은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