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치유하는 쓰기
사람은 감정의 존재다. 희.로.애.락이 매 순간 반복된다. '희락'을 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노애'를 마주하는 것은 불편하고 힘들고 애처롭다. 부정적인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 그 감정이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항상 노트를 펼치고 '쓰기'를 한다. 마음 쓰기, 생각 쓰기, 감정 쓰기, 그냥 막 쏟아내기. 그렇게 쓰다 보면 내가 왜 무엇 때문에 그토록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는지 모른 채 평온한 마음으로 노트를 덮게 된다, 면 새빨간 거짓말일 테고, 조금은 부정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쓰기가 내 삶을 구원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더불에 내 삶도 치유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치유라 말하면 너무 무거운가? (구원도 이미 너무 무겁다) 위로라고 하면 어떨까? 그렇다. 나는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다.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쓰기'에게 넘치게 받고 있다. 내 어깨에 손 얹고 있는 '쓰기'의 위로 덕분에 나뿐만 아니라 남까지 보게 됐다.
나는 때때로, 아니 자주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윙윙대는 귀와 머리를 의식하다 보면 나는 더욱더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되고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소음은 누군가를 향한 원망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다 그것은 결국 또 하나의 불안이 되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된다.
같은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밤, 생각에 생각을 더하던 그날 밤, 이명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던 그날 밤,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자꾸 커지고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 최대치에 이르며 자꾸 눈물이 났다. 나는 알았다. 이런 날이 지속된다면 내 마음은 틀림없이 병이 날 거라는 것을. 어쩌면 이미 병이 났는지도 모른다.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고 책상 위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노트를 펼쳤다. 하얀 종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얼마나 오랜 시간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이윽고 나는 연필을 쥐고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무슨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걸까? 단숨에 여백이 채워졌다. 여백이 채워질수록 내 마음은 후련했고 평온해졌다.
그래, 이 맛에 쓰는 거지!
그렇게 여백을 채우고 나서는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노트를 덮었다. '쓰기'는 내게 괜찮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떨쳐버리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하니까, 저에게 두 번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미안해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쓰기는 오늘도 자신을 만나줘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아직도 불면의 밤은 한 번씩 찾아온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여백이 채워질수록 내 마음은 후련해진다는 것을, 까만 글씨가 한 자 한 자 더해질수록 내 마음은 평온해진다는 것을, 쓰기와의 만남을 이어갈수록 불면의 시간은 짧아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아주 약하고 불안한 존재지만 동시에 아주 강하고 평온한 존재라는 것도.
오늘도 이렇게 '쓰기'를 하며 나는 강해지고 있다.
"쓰기 선생님, 오늘도 저를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고마워요. 저를 찾아와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