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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지기 Oct 27. 2020

일기를 쓴다는 것

일상을 즐겁게 만드는 개인의 기록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을 일기라고 한다. 학교 숙제로 처음 일기를 쓰게 되는 우리에게 일기는 매우 귀찮은 존재이자 강압적인 존재다.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거짓으로 만들어 내게도 했다. 어떤 일이든 '처음'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일기는 이렇게 자발적이지 못한 약간의 거짓이 가미된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유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스스로 개인의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청년의 시간을 보내고 장년의 시간에 들어선 내게 '일기'는 일상을 즐겁게 만드는 나만의 리듬이 됐다. 리듬 타는 생활을 하는 중년의 초입에 음악이 있는 셈이다. 


매일, 은 아니고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 그날그날의 기분과 일과에 따라 내 일기는 마감 일기가 되기도 하고 시작 일기 혹은 중간 일기가 되기도 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쓴다. 그냥 쓴다. 일기를 쓴다는 것, 삶을 기록한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고귀하고 성스러운 일이다,라고 쓰지만 '성스럽다'라는 단어와 무관하게 내 일기장은 온갖 감정들로 뒤덮여 있다. 특히, 나 자신에 관한. 몰론 나를 설레게 하고 새롭게 하는 날들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음악에는 단조도 있고 장조도 있지 않은가. 도돌이표와 늘임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기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삶을 사랑한다는 뜻일 테다. 나는 내가 수도 없이 짜증 나고 불만스럽지만 일기를 쓰며 이런 나를 사랑하려고 애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지친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에 대해 마음껏 떠들고 싶어서, 못마땅한 일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툴툴대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오늘도 일기장을 펼친다. 일기장을 펼쳐야만 하는 이유를 셀 수 있을까? 


누군가 써 놓은 글을 보고 위로를 얻지만 스스로 채워 나가는 일기장을 보며 위로를 얻을 때도 많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쓰기에는 일종의 치유 능력이 있다. 쓰기 테라피라고 부르면 좋을까? 때문에 매일같이 일기장을 펴고 하얀 종이 위에 색색의 볼펜을 들고, 혹은 모니터 앞에서 치유 의식을 치른다. 효과가 꽤 좋아서 하루에 두 번 세 번 공책을 펼치기도 한다. 심리상담 같은 것을 받으러 가면 상담사가 내담자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지 않는가. 이처럼 일기장은 상담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쏟아내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상담사. 

<배움의 발견>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인 '타라'는 늘 일기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라는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받을 수 없었다. 그의 부모는 종교라는 신념 아래 자식들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고 병원에도 데리고 가지 않았다. 타라의 오빠는 그녀에게 폭력을 가했지만 이를 보고도 부모는 (내가 생각하기에) 묵인했다.  


타라는 이런 삶 속에서도 펜을 들고 일기를 썼다. 책의 페이지마다, 그녀 삶의 전환점마다 일기가 있었다. 방임과 폭력에 둘러 쌓여 살던 그녀가 배움을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데에는 일기, 즉 쓰기의 힘이 컸다고 본다. 타라가 자신의 부모처럼 살아가지 않고 '배움'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 데에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역할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가 해낸 것이다. 타라는 삶의 힘겨운 순간마다 펜을 들고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들여다봤다.


일기를 쓰는 타라를 보며 나는 그녀가 일기 때문에, 쓰기라는 행위 때문에 분명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타라는 일기를 '그냥' 쓴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서술하고 마는 정도에 그치는 쓰기가 아니라 자신을 꿰뚫어 보는 쓰기를 했다. 타라는 쓰면서 성장했고 성숙했다. 


내 심연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까? 그곳에 있는 것을 꺼내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전과는 달라질 삶을 기대해도 될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잡은 펜을 계속 손에 쥐어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을 꿰뚫어 보는 쓰기를 지속하며. 성장과 성숙의 하모니가 울려 퍼지도록 계속 리듬을 만들어 내고 싶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한 가지 이상은 있다. 위로받고 치유받기 위해서만 일기를 쓸 필요는 없다. 남에게 마음껏 자랑하기에는 어쩐지 뻘쭘한 일,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악쓰고 욕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거나 들어줄 이가 마땅치 않을 때,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타인의 마음을 알기 어려울 때 등등. 우리에게는 일기장과 만날 일이 너무도 많다. 리듬에 몸을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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