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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지기 Oct 29. 2020

불면의 밤, 나는 오늘도 쓴다.

 그렇게 나는 숲으로 왔다.

불면의 밤, 나는 오늘도 갈등한다. 이 방에서 나갈 것인가, 멀뚱멀뚱 몇 시간을 보낼 것인가. 잠들지 못한 날들에 떠올린 수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이 천장에서 뒹굴다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정말 쓸데없는 생각들이었을까? 허공을 맴돌다 사라져 버린 것들이 쓸데 있을지 없을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잠이 안 오면 뭐라도 하면 될 텐데 왜 나는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하는지 이런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왜 잠들지 못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노래를 해대는 이명 때문인지, 내 몸을 과하게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루는 건지, 아무튼 나는 쓸데없이 걱정이 많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뛰쳐나왔다. 


방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동안에는 온몸과 정신이 멀쩡했는데 거실로 나와 불을 켜고 노트북을 여는 순간 눈은 몹시 피곤했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눕고 싶었다. 하지만 이왕 나온 거 무엇이라도 써보기로 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한들 어차피 쉽게 잠들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계속되는 불면의 시간 동안 내 머리를 짓눌렀던 주제, 즉 '나는 왜 잠들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쓰게 됐다. 


왜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될까? 더 많은 날을 잠들지 못하고 고민해도 끝내 이유를 모를지도 모다. 남편은 내가 혹시 공황장애가 아닌가 걱정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녹색창에 '공황장애'를 입력해보지만 그곳에 내게 맞는 증상은 없었다. 나는 피곤함을 잘 느껴서 일찍 잠들고 싶은 사람이다. 한데 이토록 불면의 밤이 지속되는 걸 보면 그 시간에 차라리 무엇이라도 쓰라는 밤의 계시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나는 지루하고도 미칠 것 같은 불면의 시간을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노트북을 들고 방을 뛰쳐나와 뭐라도 쓰는 게 나만의 받아들임의 방법이었다. 이를테면, 방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떠올렸던 문장 '불면의 밤, 나는 오늘도 갈등한다' 뒤에 한 문장 더 써 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지금 깜빡이는 커서를 노려보며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잠을 못 이루냐고,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픽 쓰러져서 잠들면 안 되는 거냐고, 나는 울부짖고 싶다.


내 하소연을 듣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깜박이는 커서와 하얀 바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흡사 자연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다. 모든 것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세워진 그곳은 속에서 터져 나오는 내 어떤 마음이라도 무조건 받아줄 것만 같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바탕을 채운 글씨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처럼 보였다. 그곳은 평화로웠다. 웅웅대는 소리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연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어쩌면, 나는 불면의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불면'은 곧 '불안'이었다. 새로운 존재는 늘 나를 불안하게 했다. 코로나 19가 그랬고, 이명이 그렇다. 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손님이 마치 내게 큰 해를 가하기라도 할 것처럼 여겨져 '이명'이라는 존재가 반갑지 않았고 쫓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명의 존재는 선명해졌다.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그런대로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처음'은 늘 힘겹다.


불면의 밤, 나는 방을 뛰쳐나와 숲으로 왔고 그곳에 나무를 심어 또 다른 숲을 만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날들을 숲으로 나오게 될지 모르겠다. 바라는 것은 숲으로 나온 그 시간 동안 내가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다. 비록 잠들지 못할 지라도, 숲에 심은 어린 나무는 자라고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룰 것이다. 


'불면을 이해할 수 없으면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라는 마음으로 취했던 행동과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후로 나는 전보다 빨리 잠들 수 있었다. 앞으로 잠들지 못하는 날이 또 찾아오더라도 이전처럼 불안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게는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숲이 있고 그곳에 가면 해야 할 일이 많다. 숲을 가꾸는 데 중요한 도구인 노트북과 손가락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이든 쓰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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