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 본 HR
먼저 이 글은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 6~9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요즘 제가 제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바로 이 〈폭군의 셰프〉입니다. 현대의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연지영(윤아)이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해서 왕의 요리사인 대령숙수가 되는 이야기인데, 단순한 퓨전 사극이 아니라 HR적인 시선으로 보면 생각할 거리도 많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6~9화는 조선과 명나라가 국가의 이권을 걸고 요리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사신단은 조선이 지면 공녀 확대, 인삼 채굴권 같은 조건을 걸고, 조선은 사탕수수와 진말가루(전분) 입도선매를 내걸면서 판을 키웁니다. 말 그대로 나라의 운명을 건 서바이벌이 된 거죠.
1.심사 장면이 던진 질문
제가 HR러로서 제일 과몰입했던 장면은 심사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양국의 요리를 왕과 명나라 사신이 두명이 직접 평가를 합니다.
물론 드라마의 스토리전개와 시대적 배경을 따지고 보면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게 봤지만,
HR적인 시선으로 봤을때는 많은 생각을 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최선의 공정한 방식이었을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 점수를 깎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예상대로 명나라 측이 조선 요리에 터무니없는 저점을 주면서 결과가 무효가 됩니다.
이후 3차전은 평가방식을 바꿔, 양국의 숙소(셰프)들이 서로의 음식을 먹고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죠.
얼핏 보면 나아진 것 같지만, 사실 이 역시 ‘깎아내리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완벽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드라마니까 재밌게 흘러갔지만, 현실이라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공정하지 않은 평가 제도는 결국 불신과 반감을 만들게 됩니다.
2.흑백요리사를 오마주 했다면?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흑백요리사에서 했던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흑백요리사에서는 셰프들의 요리를 눈을 가리고 심사위원이 블라인드 테이스팅합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맛과 완성도만으로 평가하는 거죠.
이 방식이 가진 힘은 단순합니다. 편견을 최소화하고,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요리 자체, 결과물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겠죠.
이런 장치들이 있어야 직원들이 “나는 공정하게 평가받고 있다”라는 신뢰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 신뢰가 있어야 반감이 아닌 몰입이 따라옵니다.
평가란 결국 성과를 재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신뢰를 설계하는 과정입니다.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건 늘 부담스럽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제도적 공정성이 필요합니다.
평가와 보상은 숫자나 절차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사람들이 조직을 어떻게 믿고, 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가와 직결됩니다.
작은 디테일 하나가 불신을 만들기도 하고, 같은 디테일 하나가 신뢰를 단단히 세우기도 하죠.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늘 묻게 됩니다.
“우리 조직의 평가제도는 과연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