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by 연화
저는 한동안 작가나 그 비슷한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습니다. 방에 스스로 갇혀 글을 쓴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니까요. 반사회적이기도 하고 조금 이상하죠. 화가나 음악가는 왜 그렇게 집착할까요?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걸까요? 저는 출판도 되지 않을 소설을 쓰고 또 쓰는 사람들을 압니다.

또 정말 바쁜 와중에도 하루가 저물 때쯤 일부러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소설을 조금이라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해야 할 업무도 있고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은 인정해야겠군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약간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 낫지 않는 일종의 상처를 받은 거죠. 몇 주씩 방에 갇혀서 힘들게 쓰는 것은 말하자면 그 상처를 만지작거리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그런 것 같았어요.
- 가즈오 이시구로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




kyoto_9.JPG 일본 교토, Cafe Bibliotic Hello!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때는 대학교 3학년, 기말고사 시즌이었습니다. 저는 한 카페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진도가 나아가지 않아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다른 학생들은 모두 토익공부, 시험공부, 취업 스터디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제 앞에 놓인 것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다 식은 아메리카노 한 잔, 한글이 켜진 노트북, 어지럽게 낙서된 아이디어 노트, 펜 한 권.. 과연 이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파도처럼 회의감이 몰려들었습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4년 동안, 특히 졸업을 앞둔 4학년엔 후회를 참 많이도 했습니다. 모두가 취업 시장에 뛰어들 때 우리는 소설을, 시를,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으니까요.


과연 나는,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것일까요.


졸업 후 직장 생활이 한창이던 때, 대학 때 머리를 쥐어짜며 고심했던 과제 파일들을 무심코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래, 이 정도면 괜찮지 뭐'라며 써 내려갔던 작품들이, 얼마나 유치하고 재미가 없던지 한참을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가방 속에 책 한 권을 지니고 다니라던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르바이트비가 부족해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서점으로 달려가 망설임 없이 책을 손에 넣었던 기억, 새 책의 촉감이 좋아 한참을 만지작댔던 기억도 떠오르고요.


이번 여행에선 글을 많이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직장을 다닐 땐 펜을 손에 쥐는 게 어색할 정도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일 해야 돼서.. 다양한 이유들이 그때를 정당화했습니다.

여행지를 하루 종일 돌아다녀 발바닥이 욱신거려도, 잠에 취해 눈이 감겨도 한국에서 고심해서 고른 검은 노트를 펼치고 그 날의 순간들을 기록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순간들이 제게는 참 소중했거든요. (예를 들어 그 날 대만의 햇살이 지붕 위로 고르게 퍼지던 순간, 교토 카모가와강의 낮과 밤의 풍경이라던지..) 저는 기억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 순간의 감정을 쉽게 잊곤 합니다. 당신도 마음에 드는 여행지를 발견했을 때, 그곳을 떠나야만 하는 시간임에도 자꾸만 뒤 돌아본 경험이 있으시죠. 눈으로 담아도, 사진으로 담아도, 동영상으로 담아도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문자로 기억하면 그 안온한 풍경이 더 특별한 것으로 탈바꿈하는 기분입니다.


글을 쓰는 것이 상처를 매만지는 일이라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말이 와 닿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여행 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니, 회사를 다닐 때의 불안하고 연약하던 나는 온 데 간데없고 자신감 넘치고 그 순간의 행복을 즐기려는 제 모습이 잔뜩 묻어 있더군요. 여행의 모든 순간이 행복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글 속의 저는 어떤 난관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듯 당당하기만 합니다.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 가는 문장이 죽어 있던 저를 살아 있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때 썼던 소설과 시들은 분명 웃기고 유치하고 별 볼 일 없지만, 그것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슬픔, 이별, 가족, 인간관계 같은 것들을 글을 쓰면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눈물 흘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글을 씀으로써,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들을 스스로 매만지고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와 SNS의 상관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