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연속이었던 20대를 정리하며.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든 늘 불편하게 심장이 뛰었다.
텅 빈 공간을 사람으로 채우기엔 나에겐 사랑이 부족했고, 푹 빠질 만큼 즐거운 취미도 없었고,
젊은 날 나의 유일한 관심사는 떠나는 것, 여행이었다.
내가 가진 것은 젊음, 건강한 신체,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용기뿐이었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말이 여행일 뿐 사실 불안한 마음과 크고 작은 실패로부터의 도망 혹은 현실도피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불안한 현실을 벗어나며 얻게 되는 해방감,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그곳에서 새롭게 만들어가는 나의 모습과 가능성.
전부일 줄 알았던 당연한 상자 속에서 벗어나며 얻게 되는 넓은 시야, 낯선 것을 개척해 내고 익숙해진 뒤 얻게 되는 성취감이 있다.
낯선 곳에서의 나의 모습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현실의 나 보단 좀 더 긍정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고, 나는 나의 그 모습이 마음에 든다.
스무 살의 나는 늘 여행을 꿈꿨고 언제 어디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기꺼이 떠났다.
1. 헬조선 탈출
도망쳐서 떠난 곳에 천국은 없다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도저히 이 현실을 잘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편하거나 뭔가 내 뜻대로 된다는 느낌이 없었다.
어느 곳에서나 나는 늘 어색하게 삐걱거렸고 사회 부적응자 마냥 어긋나기만 하는 나의 모습이 속상하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지만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선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게 인생이구나를 깨달았던 것 같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아갔을 뿐인데 그렇지 못한 결과와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느낌에 억울하기도 했다.
사회가 원하는 좋은 학벌, 외모, 성격을 갖지 못한 나는 왠지 첫 단추부터 어긋난 느낌에 주눅 들었고 이런 마음으로는 뭘 해도 안될 것 같았다.
누구나 살면서 경험하는 실패와 좌절 성장이지만 여전히 세상의 기준은 나에게 너무 높았고, 스무 살의 나는 나약했고, 세상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뭐든 할 수 있는 패기 넘치는 젊음을 기대한 나는 패배감, 열등감, 허탈감만 주는 세상과 어른들에 이유 모를 배신감까지 들고 밉기만 했다. 이곳에서는 나의 모습은 무얼 해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런 패배의식을 가지고 살아낼 자신이 없었고, 나는 계속 다른 세상에서의 나를 꿈꿨다.
2. 이상주의자
아마 이러한 열등감을 갖게 된 이유엔 욕심과 야망이 가득한 이상주의자이기도 해서 인 것 같다.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늘 세상이 궁금하고, 하고 싶은 게 많고, 안정적인 선택보다는 직접 부딪혀보고 싶고, 더 큰 세상에 대한 열망이 있다.
현실의 나는 실패와 열등감에 찌든 평범 그 자체인 인간이라, 그 괴리감에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결국 성공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
밥벌이하며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에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성공을 꿈꾼다는 것은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건 단순히 돈이 많은 벼락부자 졸부가 아니라, 실패와 성취를 모두 겪어낸 탄탄한 자수성가 마인드를 가진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진심이 담긴 결과물을 만들어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성취감을 느끼는 그 기분을 나도 느끼고 싶다. 참 그게 뭘까 아직도 찾는 중이지만.
아줌마가 되어서야 아니면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꿈이 이루어질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언젠간.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고 안될 수도 있지만 결국 현실에 타협하고 담아둘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하면 언젠간 되지 않을까. 다소 피곤하지만 이 꿈이 나의 삶의 유일한 동기이다. 꿈을 꾸고 행동하는 건 자유니까!
또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여자는 꿈을 좇는 주체적인 인생보단 예쁘고 안정적인 것. 그리고 시집을 잘 가는 게 전부라고 여겨지는 현실과 말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예쁘게 적당하게 성적인 매력을 잘 관리한 취집을 통한 신분 상승만이 과연 나에게 최선의 길일까.
하필 여성스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칭찬이랍시고 현모양처가 딱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었다.
과연 어른들의 말대로 나에겐 현모양처가 최선일까? 과연 트로피 와이프가 답일까?
이리저리 헤매는 나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조금은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이해되긴 하지만.
현모양처 어른들의 희생정신에 존경심은 들지만 솔직히 내 눈엔 그다지 이상적이진 않다.
나는 보다 주체적으로 살면서 뭔갈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그 가능성을 실험해 보기도 전에 나의 한계를 단정 짓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만약 나의 이런 자아실현 욕구가 좀 덜 했다면, 애정이나 인간관계가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었다면.
안정감과 가족이 우선순위 가치였다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현실에 타협했다면 굳이 떠나지 않았겠지만.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리고 평생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나의 가치를 찾고 싶다.
3) 고향의 부재
운이 좋게도 가족이 해외에 살고 있었고 해외에서 살아 볼 기회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동과 이사가 삶의 일부가 되었던 점 때문에 마음먹으면 언제 어디로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겐 고향이라고 생각되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고향이 존재한다고 해도 고향은 진짜 집, 마음의 안식처,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그런 느낌일 텐데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힘들고 지쳤을 때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아늑한 나의 집이 어딘지 아직 모르겠다.
다소 정 없고 서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좀 더 나다워지고 확신을 가지고 마이웨이로 살자고 결심하면서부터 가족 친구들과 공유할 만한 것들이 적어지고, 줄 수 없는 사람이 되자 괜히 혼자 부담스러워져서 거리를 두게 되더라.
그래서 그런지 해외에 나가게 되면서 외국인으로서 얻게 되는 여러 핸디캡들이 외로움이 처음엔 딱히 힘들진 않았다.
소속감이 중요한 가치인 한국에서 어디에서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한국인보단 차라리 낯선 나라에서의 외국인이 묘하게 나에겐 더 편했다.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내겐 내 주변의 괴로움보다는 차라리 외로움이 좀 더 견딜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