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 실패 마주하기

학벌 콤플렉스 #1

by 민지글

학창 시절 나의 목표는 하나였다.

얼른 이 끝없는 학업과 규칙과 지겨움을 벗어던지고 대학생이 되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게 놀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동아리, 과잠, 미팅, 엠티, 팀플, 공모전, 배낭여행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평범한 학창 시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늘 이곳저곳 이사 다니는 전학생이었고, 어쩌다 보니 자퇴를 하고 이민을 갔지만 1년 뒤에 다시 들어오는 바람에 복학생이 되기도 했다. 유독 학창 시절이 길게만 느껴졌다.


학업과 입시 경쟁이 학창 시절의 전부가 아니고, 물론 친구들과의 좋은 추억도 있었지만 힘든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지나고 나니 학교는 작은 사회였고 친구들과 생활하며 부딪히며 서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 건 맞지만, 어쩔 땐 감옥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왜 그렇게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편한 교복, 맛없는 급식, 외출 금지, 엄격한 규칙과 단체 생활.

눈에 띄면 안 되고, 질문과 의문이 생기면 나만 손해고. 분명 공부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닌데, 엄격한 학교 분위기와 주입식 교육, 경쟁하는 이 제도에 적응하기 참 힘들었다.


물론 같은 상황에서도 불평만 있었던 나와 달리 이 의문과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적인 결과로 탈출한 친구들도 있다. 소수이지만. 오히려 배경이 아닌 노력과 성적만으로 경쟁하는 이 제도가 오히려 공평하다고 하더라. 나처럼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불평하고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계기로, 성공의 발판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준이 높은 양질의 고등 교육을 넘치게 받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긴 하지만, 어쨌든 경쟁을 해서 소수의 사람의 살아남은 자들만 인정받는 구조가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학생으로서 당연히 누구나 겪는 스트레스겠지만 유난히 멘털이 건강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눈물로 지새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불안한 상태로, 늘 부적응자인 상태로, 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다.



얼마나 엉망이었냐면, 한 때 사이비 종교 집단에 끌려간 적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본격적인 입시를 위해 홍대 근처 미술 학원을 다녔는데, 갈 때마다 사이비를 전도하는 사람들을 자꾸만 마주쳤다.


한결같은 접근 방식이었다. 길을 묻고는 뜬금없이 인상 얘기를 하며, 힘든 일을 묻고는, 조상님이 운을 막고 있다며 더 얘기를 하자는 식. 그땐 순진하긴 했지만 그 정도 이성적인 판단을 못할 정도의 나이는 아니라서 함정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끝없는 터널 같은 이 시기에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또 혹했던 것 같다. 가위를 자주 눌리기도 하고, 정체 모를 우울감과 불안이 어쩌면 내 탓이 아니라 조상의 이유라는 말이 그 이유가 생각보다 그럴 듯 보였고. 그리고 학원에 가기도 싫고, 약간의 호기심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그렇게까지 의지할 사람이 없었나 싶다.


사실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었고 오히려 재미있는 해프닝 정도다. 대학생인 언니 오빠 두 명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충 내가 안 풀리고 자꾸 힘든 이유는 조상님이 운을 막고 있어서이고, 결국 조상님 화를 풀어줘야 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그랬다.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학원 대신 지하철을 타고 다 같이 어느 한 오피스텔로 같이 들어가고 있었다.


오피스텔에 갔을 때, 꽤 많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었고 다들 환영해 주었다. 다들 온화한 얼굴이었고 가족처럼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오손도손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부 짜고 치는 계획된 연출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방에 들어가서 한복으로 갈아입고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제사상 앞에서 한 40분 동안 꽤 오랜 시간 제사를 지냈다.


엄청난 양의 절을 반복하면서 두 명이 옆에서 정체 모를 주문을 중얼거렸고, 나를 데리고 온 언니가 나에게 한복이 잘 어울린다고 했고 (ㅋㅋㅋ) 종이에 한문으로 뭔가를 쓰고 태웠다. 그러고는 그게 끝이었다. 다음에 보자면서 연락처를 교환하고 집에 보내줬다. 다행히도 돈을 뜯기거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받거나 하진 않았고 무서워서 그 뒤로 연락은 차단했다. 계속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같이 활동하고 그랬었더라면 또 다른 일들이 펼쳐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학원을 갔고 선생님께는 지하철 잘 못 타서 늦었다는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부끄럽고 바보 같은 이 사건을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아서 뭔가 나만의 비밀이긴 했는데, 사람이 정말 힘들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싶었다. 그 뒤로 지원했던 대학도 다 떨어지고 일이 잘 안 풀린 것을 보면 아쉽게도 정말 사이비였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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