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콤플렉스 #2
내가 목표한 학교는 인서울 4년제 대학교였다.
적어도 고2 때까진 모의고사 성적도 그림 실력도 꽤 안정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점점 멘탈이 나가기 시작하더니, 우울증이 심해지고 생각이 많아졌고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학원에만 의지했던 것 같다. 학교 졸업도 가까스로 했던 것 같다. 사실하던 대로 유지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는데 버티고 버티다가 하필 중요한 시기에 터져서 아쉽긴 하다. 그렇게 나의 수능 성적은 숫자도 절망적인 444로 끝났다.
예체능을 했기 때문에 실기 시험을 끝내고 났을 때 이미 2월 말이 되었던 시점이었고, 고민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재수는 나의 선택지에 없었고, 유학으로 도피하고 싶기도 했지만, 큰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선택했다가 금방 다시 오고 싶진 않았다. 평생교육원, 패션전문학교, 전문대학교, 지방대학교 등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정시 2차로 전문대학교를 선택했다.
정말 내 인생에 전문대학교는 상상도 못 했다.
나에게 전문대는 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우거나 공부엔 관심 없고 질이 좋지 않은 (?) 사람들이 가는 정도의 학교라고 생각했는데. 전문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편입이라는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관심 있던 패션 마케팅 학과가 있었기도 했다. 학교를 가보니 기대치가 없어서 그랬는지 생각한 것만큼 최악은 아니었고, 나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도 꽤 있었다.
물론 내가 꿈꾸는 캠퍼스의 낭만은 없었다. 약간 대학교보단 분위기가 학원이나 고등학교의 연장선과 비슷했다. 당시 패션 MD 나 패션에디터를 꿈꿨기에 좋아했던 것을 공부하니 재미는 있었지만, 역시나 현실적으로 이쪽 세계도 취업을 위해서는 학교 간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자이너를 꿈꿨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엔 진로보다는 우선 인서울 4년제 대학생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편입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편입 학원을 다니고 도서관에서 찌들면서 또 인고(?)의 세월을 또 보냈다. 물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동아리도 하고, 축제도 즐기고, 술도 마시고 그랬지만 전혀 즐겁지는 않았다. 마음은 어쩐지 늘 무거웠다. 전문대학교 2년 동안은 대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좀 더 재수생의 마인드였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학교 이름을 말하기도 싫고, 괜한 죄책감에 늘 주눅 들어 있었다.
전문대학교를 다녀보니 더 느꼈다. 학벌주의가 만든 온갖 쓸데없는 학교와 학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다른 좋은 간판의 학교들과 비교해서 학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펐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나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장학금을 꼭 받아야 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독기를 품고 1등을 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인생 첫 1등이지만 생각보다 나의 기분과 자존감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여전히 전문대생이라는 패배자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열등감과 죄책감으로 졸업하고 편입을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결과는 아쉬웠다. 내가 갈 수 있는 수준의 학교는 경기 4년제 대학교였다.
나에게 당연할 것만 같았던 인서울 4년제를 얻지 못하고 또 절망을 견뎌야 했다. 어쩌면 나는 해도 안 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패배감. 나의 능력과 수준에 대해 대한 회의심. 동시에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라는 마음. 여전히 입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내가 너무 미웠다. 또 도전해서 혹은 올인해서 더 좋은 학교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젠 끝내야 했다. 이렇게 계속 대학과 입시에 집착하다간 나의 젊음이 다 지나갈 것만 같았다.
그래도 편입한 학교에서 나름 열심히 다녔다.
무엇보다 집에서 굉장히 가깝기도 했고, 경영학과여서 좋았고, 확실히 이전 학교에 비해서 굉장히 좋은 학교였다. 2년 동안 최대한 학교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교환학생, 인턴십, 외국어 교양 수업, 동아리, 편입생들끼리 친목 도모, 휴학하고 돈 모아서 유럽 여행하기. 당연하게도 꿈꿨던 신입생의 대학 생활은 없고, 여전히 패배감에서 빠져나오진 못했지만,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된 나는,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듯했다. 콤플렉스 덩어리인 상태에서 눈치 보며 살아가기보단 해외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어쩌면 도망이기도 했지만 자유보단 채워지지 않는 빈틈을 채우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았고, 꽤 많은 기회가 있고, 도전을 했고,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또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서 좌절도 많이 했지만, 결국 버티다 보면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재미도 있는 것도 같다. 만약 그때 실패하지 않았다면, 쉽기만 했다면 삶이 지금처럼 다채롭진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