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가득했던 올해 돌아보기

2025 recap

by 민지글

회사원 1.3년

졸업생 비자 3년, 한국인, 나이, 회계 전공과 약간의 호텔 경험을 가지고 호주에서 회사원이 되어보았다. 규모가 꽤 있는 미국계 글로벌 IT 회사로 첫 직장으로 꽤 좋은 기회였고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호주 시급 대비 월급이 높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재택근무를 했고, 가족 친화적이고 워라밸이 좋은 안정적인 회사였다.


장점이 많지만 부서가 특수해서 커리어적으로 애매하기도 하고, 트레이닝 기간이 길고, 부서 특성상 보수적인 부분들에 적응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 회사 자체가 처음이라 그런지 정시 출근에 칼퇴근이어도 뭔가 너무 많은 시간 일을 일한다고 느껴졌다. 성취감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간절함 가득한 상태로 면접 볼 때가 가장 재미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익숙해져 갈 무렵 이렇게 묻혀가는 느낌으로 버티기엔 내게 정해진 비자와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다. 살기 좋다던 멜버른에서 홀로 재택근무를 하려니 가족들로만 가득한 사람들 틈에서 저녁과 주말에 외로운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다. 시드니와 비교했을 때 규모가 작게 느껴졌고, 나와 비슷한 사람과 커뮤니티를 만들지 못했던 것 같다. 적응의 과정이겠지만 한층 더 고립되었고 경직된 사람이 되어갔다.



블로그와 브런치

외롭고 성취감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이젠 나의 것을 만들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언젠간 어떤 형태로든 메시지가 담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일단 나의 경험을 소재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평범한 내가 겪은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 지난 나의 선택과 결과들을 조금씩 기록하다 보니 조금 침울해지기는 했지만 후련했고, 잠시나마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해외생활 중에 해내왔던 것들을 그럴듯하게 써보기도 하였다.


작년 말부터 블로그에 꾸준히 담아왔던 글을 잘 정리해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고 해냈다. 엄청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성취감은 엄청났다! 구독자를 모으고자 혹은 화제성을 위해 자극적인 글을 쓰기보다는, 진지하고 우울하더라도 최대한 진정성 있는 글을 쓰려고 했다. 꾸준히 기록하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소소한 일들이 있었다. 취업 웹사이트에서 나의 해외취업 후기 공유를 요청하거나, 오프라인으로 구독자 만남을 해보기도 만나보기도 했다. 최근엔 아주 잠시 한 글이 메인에 걸리기도 하였다.



요가 강사 자격증

퇴사 후 글 다음 유일한 취미인 요가 자격증 따기에 도전하였다. 유연한 편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요가가 고난도 동작보다도, 명상이 있고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 꾸준히 할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요가 강사 자격증을 땄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안 되는 동작들이 더 많은 초보자다. 자격증 대상자가 꼭 강사만이 아니기도 하고,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명상이 없고 강제성 있는 요가는 쉽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채식 식단과 요가만 하니 체력적으로 약해지고, 숙련자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물갈이까지 하면서 여러모로 최악의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해내야 하는 요가가 싫어지기도 했다. 이후에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기도 하고, 한동안은 요가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래도 아직 꾸준히 요가를 하고 있다. 건강과 상관없이 살이 좀 빠지고 근육이 좀 더 붙은 것 같다. 여러 종류의 요가를 맛본 이 시점에서, 더 다양한 동작들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결국엔 명상이 제일 좋다는 것.



정착 이슈

사실 유학을 오지 않았어도 어떻게든 지금까지 해외 어딘가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 목표대로 승무원이 되든, 가족이나 친척에게 빌붇든, 워킹홀리데이든. 어쨌든 20대에는 최대한 외국에서 살고 여행하고 싶었다. 올해는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여행을 했다. 멜버른, 발리, 시드니, 골드코스트, 브리즈번. n번째 지역 이동과 이사, n번째 입사 퇴사를 반복했다. 지치고 싶지 않지만 당연하게도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너무 지쳤다. 나름 순간순간 신중했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벌려놓은 지난 일들을 보면 충동적이고 건강한 정신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 호주 생활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뭐 굳이 이민을 오고 싶을 정도로 좋지는 않다. 당장 한국에 돌아가기엔 애매한 스펙인 지금. 치열한 한국에서 또 어떻게 살아남을지 막연히 겁도 난다. 비자가 1년 남은 이 시점에서는 충동성을 줄여서 최대한 한 곳에 정착하고,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들을 마무리하며, 한국에서 뭐 해 먹고살지 준비도 해야겠다. 그래서 내년엔 어디에서 무얼 하며 머물 것인가 자네. 나도 궁금하네 나의 미래가.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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