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도 시절인연이 있다면
훈제 연어를 매일같이 먹던 때가 있었다. 와인을 좋아하게 되어 자주 마시기 시작했을 즈음이니 십몇 년도 전이다. 냉장고에 꼭 훈제 연어가 떨어지지 않게 채워놓고 살았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술을 마실 때면 심심하면 나오는 안주가 연어 플레이트였다. 짭짤하고 감칠맛 있는 연어를 상큼한 양상추나 엔다이브에 올려 시원한 양파, 시큼한 케이퍼, 맵쌀 한 홀스래디쉬 소스를 올려 먹으면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었다. 생연어도 좋아해서 종종 먹었지만 상대적으로 보관이 편한 훈제 연어가 조금 더 취향에 맞았다. 그러나 모든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몇 년을 집중적으로 먹고 나니 싫증이 나서 언젠가부터 점점 먹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스르륵, 시간이 흐르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연어와 서서히 멀어졌다. 고급 횟집이나 호텔 뷔페에 가도 연어를 먹지 않았다. 몇 년을 불타오르다 꺼지더니 이후로는 거의 십여 년을 연어와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질려서 잠깐이겠거니 했는데 어느 순간 연어를 먹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습지만 연어가 음식계의 시절인연이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가깝고 살갑게 지내다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어도 서서히 멀어지는 사이가 있으니 말이다.
연어를 시절인연에 비유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다만 연어를 매일같이 먹던 때를 생각하면 그 시절 매일같이 어울리던 인연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시절인연이라는 말도 붙여보게 되었다. 시절인연. 인간관계에 괴롭거나 힘들 때 이 말만큼 위로가 되는 말이 있을까. 오래전 친하게 잘 지내다 멀어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슬퍼하는 내게 누군가 시절인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때는 어려서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었고, 그래서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지금보다도 더 큰 데미지로 다가왔다. 물론 지금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얼마 전 한밤중에 인스타그램에 뜬 연어 요리를 보다 문득 먹고 싶어져 새벽배송으로 훈제 연어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으려고 보니 케이퍼와 홀스래디쉬 소스도 없어서 모두 주문해야 했다. 용량이 큰 것들을 주문하려다 또 언제 먹을까 싶어서 작은 것으로 샀다. 다음날 훈제 연어가 왔는데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며칠을 방치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한참 자주 보이던 연어 스노보드를 만들었다.
연어 스노 보드
준비물 : 연어 (훈제연어), 크림치즈, 양파, 케이퍼, 레몬
1. 크림치즈를 접시에 깔고 다진 양파와 케이퍼를 올리고 연어를 한입 크기로 잘라서 올린다.
2. 레몬즙과 제스트를 뿌리고 딜을 조금 더했다.
3. 바게트를 구워서 곁들인다. 루꼴라나 양상추 같은 채소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연어와 재료만 있으면 와인과 함께 먹기 딱 좋은 간단한 안주이다. 연어에서는 익숙하지만 그리운 맛이 났다. 오랜만에 아주 맛있었다. 굳이 시절인연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될 관계조차 스스로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쓸 때가 있다. 어쩌면 멀어진 관계에 상처받기 싫다는 방어적인 마음에 나온 말일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시절인연으로 끝나고 싶지 않은 인연들도 있다. 그저 각자의 자리를 잘 지키다 언제 만나도 어제 만난 듯 편안하고 반가운 사람이 되고 싶다.
만드는 방법은 인스타그램에도 올렸어요. 놀러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reel/C3h8eHUB4Y8/?igsh=bXIxMm82cXI3b2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