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죽
혼자 한 끼를 먹어도 늘 잘 먹던 사람인데 언젠가부터 밥 먹는 게 귀찮을 때가 많아졌다. 정확히는 먹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차리는 과정과 시간들에 좀처럼 시간을 쓰지 않게 된다. 뭐가 먹고 싶어도 머릿속으로 조리과정을 생각만 하다 결국 포기하고 라면처럼 간단하고 빠르게 할 수 있는 것만 해서 먹는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한두번이 아니라 악순환이 된다. 친한 언니의 엄마가 나이가 드니 식사 차리는 것이 더 귀찮다고 얘기하신다고 들었다. 찾아보니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일들에 싫증이 더 잘 느낀다고 한다. 이해가 가면서도 웰빙과 웰다잉에 관심을 둔 사람으로 이렇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싶어서 냉장고를 둘러보았다.
냉동실에는 얼려둔 현미밥이 있다. 백미만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현미가 더 좋다. 김밥도 이제 백미는 좀 심심한 것 같고 씹는 식감이 더해진 현미 김밥이 더 좋다. 나이 들면서 바뀌었다. 얼려둔 현미밥 한 덩이를 물과 함께 끓인다. 끓인 밥이라고 해서 찬밥을 물에 넣어 끓이는 것을 어릴 때는 종종 먹었는데 나이가 들고 독립한 후로는 잘 먹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담근 김치나 오이지를 보면 밥에 물을 말아서 잘도 먹었는데 지금은 거의 그럴 일이 없다. 죽이나 누룽지를 머리로 생각할 때는 좋아하는데 막상 그리 자주 먹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아서라기보다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푸짐하게 차려먹고 싶은 욕심에 소박한 밥상을 잊고 산 것만 같다.
현미밥이 푹푹 소리를 낼 때까지 끓여낸 후 참기름을 뿌리고 참깨를 얹는다. 반찬은 명란, 창난, 낙지젓. 좋아해서 자주 사는 젓갈들이다.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있어도 좋은데 세 가지가 다 있으니 매우 사치스러운 기분이 든다. 명란젓에는 엄마가 직접 들깨를 사서 방앗간에 맡겨 짰다는 들기름을 듬뿍 넣고, 창난젓과 낙지젓에는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잘 섞어준다. 냉장고에 있던 연두부에 간장 베이스의 오리엔탈 드레싱을 뿌려준다. 평소보다 소박한 밥상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입맛이 돈다. 라면보다 복잡하지도 않았다. 먹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아 나는 뭐든 잘 찾아서 먹는 사람이었지. 그렇다면 앞으로도 찾아 먹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