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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an 14. 2021

떡볶이 이야기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증거






덕자네 방앗간 떡볶이





 고백하자면, 나는 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거창하게 고백까지 하는 이유는 내가 만나온 멋진 여성들은 대부분 떡볶이를 좋아하고, 심지어 그들의 떡볶이 사랑은 나로 하여금 떡볶이가 매우 멋진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렬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있지 않나. 멋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박한 것은  사람을  멋지게 보이게 만드는 .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이 떡볶이를 예찬하는 모습에서 그런 지점을 발견했고,  역시 그렇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떡볶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면 혼자 있을  절대  먹지 않는 음식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떡볶이를 먹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당연히 아니다. 앞으로의 글에서도 자주 변명해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해두자면, 좋아하지 않는다고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웃으라고 하는 소리지만 사실이다.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가족들과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과 떡볶이를  자주 먹는 편이다.







 우리 회사는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인데, 살롱문화처럼 크고 작은 모임들이 빈번한 편이다. 모임이 시작된 것은  년도 훨씬 , 도산공원  지하에 쇼룸  갤러리를 운영하면서였다. 마치 비밀벙커처럼 은밀하고 견고하기 그지없던 공간이었는데, 희안하게도 들어오는 사람들이 안락하다며 좋아했다. 고객으로 온 사람이 친해져서 친구를 데리고 오고, 다시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데리고 왔다. 그렇게 거의 매일을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때때로 밤샘을  정도로 자리가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살롱문화라는 말이 어울리게 그곳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각계각층의 여러 사람이 모여서 친목을 다지는 단순한 사교의 자리이기도 했고, 종종 심도 높은 토론과 대화들이 오가기도 했다. 인문학을 기반으로  작은 수업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안주인 역할을   나는 식사에서 간식까지 모임에 맞는 것들을 준비하곤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음식이 바로 떡볶이였다.


 어느 음식이나 그러하지만 떡볶이는 만드는 곳에 따라 맛이 다르다. 이 집은 이래서 맛있고, 저 집은 저래서 맛있고. 우리는 그때 서울의 내로라하는 떡볶이집에서 공수를 해서 매번 다른 집 떡볶이를 먹곤 했다. 마치 떡볶이 원정대처럼. 반포동의 애플하우스, 신당동의 진미 떡볶이, 압구정의 루비 떡볶이, 홍대의 미미네, 가로수길의 빌라드 스파이시, 강남역의 덕자네 방앗간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하게도 먹었다. 어느 날은 점심과 저녁, 또 어느 날은 2,3일간 연달아 떡볶이를 먹는 일도 있었다. 불행히도 그때 나는 떡볶이를 지금보다 더 좋아하지 않았던 때라 남들은 이렇게 자주 떡볶이를 먹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나 외에 연달아 함께 자리해야 한 대표님과 다른 팀장님은 떡볶이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며 좋아했고, 그때서야 나는 내가 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매번 떡볶이를 준비한 이유는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떡볶이처럼 소박한 음식에도  기쁘게 소리 지르며 반응해주는 사람들은 나를 기쁘게 했고, 어느 집에서 사야 좋아할까 떡볶이 맛집을 찾아내게 만들었다. 당시에 자주 오던 분들은 다소 대하기 어렵게 느껴지던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의 대표님,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의 직급 높은 분들인 카리스마 넘치는 이사님들, 본부장님들, 너무 예뻐고 잘생겨서 쳐다만 봐도 숨이 멎을 것 같던 연예인들, 스타일리시한 패션지 에디터들, 생각의 차원이 다른 것 같은 아트 작가들, tv에서 보던 기자님들과 정치인 등등. 이런 어디에서 만나기도 어려운 대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손님들에게 떡볶이를 내놔도 되냐고 대표님에게 몇번이나 확인했었다. 대표님의 당당한 당연하지란 대답에 나 혼자 조금 걱정을 했었다. 사실은 처음에는 많이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분들이 떡볶이를 마주하면 소년, 소녀처럼 활짝 어가며 반가워하더니 도란도란 다른 떡볶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럴 때마다 떡볶이란 음식은 마법처럼 느껴졌다. 딱딱한 갑옷을 벗고 말랑한 웃음을 보여주는 신기한 존재. 도대체 떡볶이가 뭐길래.  안에서 하찮던 떡볶이의 위상은 손님들의 애정에 비례해 높아졌다. 떡볶이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다. 떡볶이님의 위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만난 어느 드라마 작가님은 다이어트 중임에도 불구하고 곱창 떡볶이를 시키자 젓가락을 들고 말았다. 떡볶이님이시여.







 그렇게 대단한 위상을 인정함에도 혼자  먹는 일은  번도 없던 떡볶이건만 나는 요즘 자주 떡볶이가 그립다. 그냥 조금 대충 그리운 것이 아니라 매우 무척 많이 그립다. 코로나 19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예전과 같은 모임을 하기가 어려운 데다, 2.5단계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에는 사람들과의 오프라인 교류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에게 떡볶이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사람들과의 만남의 상징과도 같다. 혼자서는 먹지 않지만 함께일 때는 먹는, 좋아하지 않지만  자주 먹는. 그것은 내가 알게 모르게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람들과 만나서 떡볶이 하나에 소리 지르며 까르르 웃을  있는 그런 시간들이 요즘은 매우 그립다. 친한 사람뿐 아니라 초면에도 떡볶이를 먹으면서 허물없는 친구라도  것처럼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지는  시간들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종식되는 그 날이 오면 많은 모임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메뉴는 떡볶이로 통일. 일주일간 매일 떡볶이를 먹게 된다 해도 그때는 기꺼이 웃으며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이 맛이야.” 실실 대며 웃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바라본다. 얼른 그 날이 오기를.






신당동 아이러브떡볶이의 즉석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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