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술관은 1년 뒤에 문을 닫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본의 미술관에서 근무를 하던 어느 날, 상사가 조용히 팀원들을 모아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다. 1년 뒤에 이 곳이 사라진다고 한다. 물론 시설 이전을 위한 폐관이여서 몇 년 뒤 똑같은 시설이 다른 곳에 생겨난다는 소리를 들었고, 몇몇 선배들은 그런 소문을 들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갑작스러운 소식이였다.
세상에 어느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시작이 있기 마련이다. 이 끝이라는 것은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언제가 마지막일지 알고 그 기한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후자에 속했었다.
'여기가 사라진다고?'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 소식을 듣고나서도 나는 하던 업무를 이어갔고 폐관까지 1년, 반년, 3개월, 1개월, 10일, 1일. 그렇게 마지막의 시간이 다가오면서도 그 업무들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1년동안 많은 변화도 있었다. 다른 회사를 찾아 이직을 하며 떠나가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함께 업무를 하고, 업무 체계도 바뀌어가고. 주변에 있던 다른 시설들도 서서히 문을 닫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폐관 소식이 알려지고. 한 번 쯤 방문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손님들도 많이 찾아와주시고, 이전에 방문해서 또 한 번 방문하고 싶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찾아와주시면서 코로나 시기였음에도 마지막 날까지 눈코틀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는 했었다.
그렇게 폐관일 당일. 오늘이 마지막인건가? 싶을 정도로 평소와 같이 옷을 입고, 평소와 같이 아침 조례를 하고, 평소와 같이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며. 정말 마지막날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와 다름없이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고. 일을 끝내고 전부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난 후, 업무는 끝났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마지막 문을 닫는 시간까지 미술관 안을 걸어다니며 하나하나 눈에 새기기 시작했다. 언제나 다름없는 일이였고, 작품들이였고, 장소였지만, 내일부터 이 곳을 오지 못하는구나. 앞으로 볼 수 없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그렇게 그렇게 내가 일을 했던 미술관이 폐관을 하였다.
내가 이 곳에서 일을 하면서 물론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밥을 먹거나 쉬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하는 직업이여서 다리도 아프고 몸도 아프기 마련이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말을 하는 직업이였기 때문에 목도 아프고 목이 쉬기는 일수. 실수를 한 날은 '내가 이 일을 계속 이어가는게 맞을까? 다른 사람들 처럼 나도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일을 찾아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거대한 클레임을 대응한 날은 '나도 사람인데 이런 말까지 들어가면서 이 일을 이어가야할까? 그만두고 한국에 빨리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그랬기에, 솔직히 소식을 듣고 한동안은 실감이 나지 않았고, 믿기지가 않았고. 이 반복되지만 반복되는 일이 없는 업무의 연속이 끝이나는구나 라는 마음에 시원섭섭한 마음도 없지않아 있었다. 그런데 업무가 종료되고 미술관 문이 닫기며 직원이자 동료들이 끝까지 남아있어주고 방문했던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펑 터지고야 말았다.
마지막까지 후배들에게 동료들에게 웃으면서 마무리를 하자라고 그렇게 업무를 해왔었는데, 역시 마지막이라는 순간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이제 정말 끝이구나. 이 곳에 오지 못하는구나.' 라는 마음과 '힘들었을 때도 있지만 즐거웠고 이 미술관에서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마음같아서는 더 일을 하고 싶었다.' 라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서 뒤섞이면서 그 순간 숨을 죽이며 꺼이꺼이 울고야 말았다. 주변에 같이 남아서 구경하던 동료들도 울음이 전파가 되었는지 나도 안울려고 했는데 하면서 서로서로 울다가도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었던. 나의 첫 직장의 마지막날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