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슬픔을 손님에게 알리지 말라.
언젠가라는 것은 없을 수 있다.
7월. 일본도 한국과 다름없이 이맘때면 장마철에 들어가기에 끊임없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는 한다.
일본의 미술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어느 때와 다름없던 날. 인포메이션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때, 한 아르바이트생의 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본 배우분의 이름을 넌지시 들은 것 같았다.
'곧 시작하는 드라마 관련 신 정보라도 떴나? 새로운 무대 출연 정보라도 떴나?'
어떤 일인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근무 중이었기에 그 마음을 꾹 참고, 퇴근길 전철 안에서 휴대폰으로 그의 이름을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본 배우분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일본어를 공부한 시기가 길었기에, 일본어 공부의 계기가 되었던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일본 드라마, 가수, 배우, 성우, 만화, 소설, 버라이어티 등 정말 많은 장르를 접했고, 좋아했고, 좋아하고 있다. 1년간 장르 불문하고 100개가 넘는 작품을 볼 정도로 일본드라마를 좋아했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렇기에 시기에 따라 좋아하는 작품도 좋아하는 배우분도 많아졌지만, "일본 배우 중 어떤 분을 좋아하시나요?"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항상 언급했던 건 이 분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정말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오시던 분이었다. 내가 교토에서 교환학생을 했을 때, 그리고 도쿄에서 워홀과 취업비자를 받고 살고 있던 동안에도,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곳에서 그의 활동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 영화 무대 인사도 도쿄에서 5시간 떨어진 곳에서 하니깐 다음번에는 꼭 가야지. 이번에 참여하는 공연도 휴가를 못쓸 것 같으니 다음번에는 꼭 가야지. 다음번에 다음번에. 그렇게 미루고 미뤘었다. 바보같이.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다음은 오지 않았고, 나는 이제 새로운 그의 모습을, 그의 연기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언젠가 실제로 보러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에게 화가 났다. 왜 당연히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조금만 시간을 냈더라면, 다음번으로 미루지 않았더라면 그를 실제로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저 화가 났다 나 자신에게. 당연히라는 건 없는데. 영원한 건 없는데. 이렇게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렸다면, 그렇게 말했더라면 조금이나마 미래가 바뀌었을까 하고.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나의 후회를 주워 담을 수 없기에 그저 퇴근길 전철 안에서 숨죽여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좋아했던 그는 그날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나에게 다음 날의 해는 여전히 떴고, 나는 여느 때와 변함없이 미술관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기분은 가라앉고 마음은 싱숭생숭했지만 난 일을 해야 했다. 내가 어떤 기분이어도, 어떤 일이 있더라 하더라도.
그러다가 문뜩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랬을 수 있었겠다라고.
서비스업에 종사를 하고 있으면 언제나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국적, 연령, 성별에 상관없이 수백 수천 명의 사람과 만나게 된다. 내가 어떠한 상황이고, 어떤 기분인 건 상관없이 많은 손님들을 응대해야 한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어딘가에 구경하러 갔을 때, 스태프의 응대나 태도가 좋지 않으면 왠지 그날 하루 기분이 계속 나쁜 경우가 있지 않은가? 사람은 기분 좋았던 기억보다도 나쁜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는 법이다. 그렇기에 내가 응대하는 손님들은, 이곳에 온 손님은 이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온 것이고 나는 그를 돕는 역할이기 때문에, 나의 기분과 상태를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으로 일에 임했었다.
엔터메도 그랬지 않았을까. 나는 결국 화면 너머로 보이는 단편으로만 그를 접했고 판단하고 있었기에 그가 실은 어떤 마음이었고,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정확한 건 알 수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알 방법은 없다.
난 그의 미소를 좋아했다. 미디어에서 항상 보이는 밝은 미소와 연기할 때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멋진 그의 모습을 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모습들을 좋아하고 있다.
오래간만의 맑게 개인 하늘이었지만, 빗소리는 끊이지 않고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도 나는 웃었다.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했고, 웃음으로 응대를 했다.
슬픔은 지워지지 않고, 후회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비는 그치고, 물웅덩이가 있던 자리에는 그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
7월 18일.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은 국화보다 장미가 더 어울리는 그가 떠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