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어.

하지만, 그래도.

by Outis

"엄마는 지금껏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예요?"


"... 어?"


저는 눈을 껌뻑이며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면서 부쩍 느려진 막내의 입에 막 밥숟가락을 떠 넣던 중이어서, 질문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죠.

질문이 접수 완료되자 여러 후회되는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중 제일가는 삽질을 고르는 거야 어렵지 않았지만, 아이가 무슨 의도로 저런 걸 물어보는 걸까 싶어 저는 대답을 망설였습니다.


엄마가 시간만 끌고 있자 아들이 질문을 바꾸어 다시 물었습니다.


"만약 딱 하나 없던 일로 할 수 있다면, 뭘 고르고 싶어요?"


"딱 하나라. 있긴 한데..."


"뭔데요?"




때는 고3 말. 수능이 끝나고 수시입학 모집이 시작된 때였죠.


"간호대 가."


처음에는 저와 가족들 모두 어머니가 농담하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진심이셨습니다.

원래도 병원에 대해, 의사와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간호사라뇨. 저랑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어요. 가족이나 친구들은 물론이고, 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완고하셨어요. 단 한 번도 제 성적이나 진로에 대해 상관하지 않으셨는데, 막판에 와서 갑자기 이러시니 저와 가족 모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죠.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자 아버지와 오빠도 어머니를 적극적으로 말리고 나섰습니다.


"아니 얘가 무슨 간호대야, 이 사람 참..."


"엄마, 차라리 우리 과로 보내요. 내가 책임질게."


그러나 어머니는 전혀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이셨습니다. '내 딸을 반드시 내가 그토록 선망하던 병원에서 일하게 하리라', 이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물론 저는 어머니의 말을 들을 생각이 단 1도 없었습니다.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전공을 할 거라고,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기에 그 외의 길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그걸 잘 아시는 어머니는 급기야 제 약점을 파고드셨습니다.


"수학? 그거 전공해 봤자 뭐 할 건데?"


그 순간, 저를 아끼시던 수학 학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 OO아, 너는.. 수학은 전공하지 마라.


아마 지금 제 나이셨거나 조금 더 어리셨을 선생님. 그분의 목소리에는 휴식 시간에 피우시던 담배 같은 씁쓸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아직 어린 제자에게 당신이 택한 진로에 대한 후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대한 패배감을 내보이시는 그 심정이 어땠을지.. 그렇기에 선생님의 그 한 마디는 아주 크게,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취직도 못하고 돈도 못 벌게 되면 어쩔 거냐고?"


"?!"


돈을 못 번다.

= 부모님께 의지하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

= 빨리 독립해서 부모님과 멀어지려는 내 계획이 늦춰진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어요.


그때 제가 만약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더라면,

나는 그래도 내 길을 가겠다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칠 수 있는 인간이었더라면, 그랬더라면...


"... 알겠어요."


그러나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더 이상 제 미래가 제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남의 인생 같았죠.


그 결과 저는 대학 4년 내내 방황했고,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휴학으로 버렸으며,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해서 딴 자격증을 결국 쓰지도 못하게 됩니다.

'취직이 보장되는' 학과를 나와서 말이죠.


만약 그때 제가 다른 전공을 골랐더라면,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흥미를 붙일 수 있는 걸로 골랐더라면.

중간에 전과 승인이 났을 때 거기로 갔더라면.


그랬더라면 저의 20-30대는 달라졌겠죠.




하지만...


"아마 안 할 거 같아."


"왜요?"


"그걸 없던 일로 하면, "


스스로를 지워버리고 싶은 강렬한 자기 파괴적 욕망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현실에 안주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자기가 고른 길에서 실패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진작 저세상에 갔을지도요.

어느 쪽이든,


"너희가 안 태어났을 거니까."


한 번 저지른 일은 없던 일로 할 수 없어요.

잘못 든 길에는 반드시 발자국이 찍히고, 아무리 잊고 싶어도 실수는 지워지지 않아요.

급 커브를 돌리든, 한참 돌아가든, 아니면 그냥 쭉 가든, 인생이란 노트에는 지우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죠.

길을 잘못 들었기에 생각지도 못한 것과 마주치고, 생각지도 못한 걸 해내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소중한 것도 있을 거예요. 다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어떤 것이.




"살아봤자 후회와 수치심만 쌓일 뿐이야."


제가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건방진 소리를 떠들고 다녔습니다만,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후회가 없고 부끄럽지 않다는 건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돌이키고 싶은 일이 있나요? 미칠 듯이 후회스럽고 죽을 듯이 부끄러운 일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오늘의 당신이 어제의 당신보다 낫다는 증거니까요.



분명 지금 그 자리에도 있을 겁니다.

이 아니면 어린 싹이, 그것도 아니면 아직 잠들어 있는 씨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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