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가 아니라고요.
일단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클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바로 뒤로 나가시거나, 아님 끝까지 스크롤다운 하셔서 분량을 보시거나, 대략 줄거리를 파악하시거나, 또는 상냥하게 라이킷 눌러주고 가시거나. 대부분 이 중 하나에 해당하실 텐데요.
어차피 "이건 여러분께 꼭 도움이 될 겁니다" 하고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글도 아니니 괜찮습니다.
여러분과 비슷한 고만고만한 삶이고, 그럼에도 글을 내놓는 저는 뻔뻔한 사람일 뿐. 제 얘기 안 들으셔도 하등 손해 보실 거 없어요.
여기까지도 안 읽으실 분 허다한데 굳이 이런 걸 주절거리는 이유는, 그저 자기 위안입니다.
이런 글을, 아니 글 자체를 써도 괜찮다는 자기 위안.
생일과 감기.
이 조합에 보통은 "아이고, 저런~ 하필이면 생일에 아팠네" 하고 안타까워할 겁니다.
생일은 좋은 날이고, 감기는 안 좋은 일이니까요. 생일은 정해져 있는 날이고, 감기는 피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에게 생일은 좋은 날이 아닙니다. 아니, 좋은 날인지 모르겠다는 표현이 맞겠군요.
제가 태어난 것이 좋은 일인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럼 제 반응은 위의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겠지요. 네,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더 처절하게 고민했습니다. '고작 감기 정도로 끙끙 앓아대서야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요.
약간 그런 느낌 있죠. "이 정도 문제도 못 풀어서 나중에 시험은 어떻게 볼래!", "이것도 못해서 나중에 어떻게 시합에 나갈래!" 같은.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까 봐, 저는 그게 제일 두렵습니다.
그러니 감기 정도로 끙끙대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 훨씬 심각하고 아픈 질병/상태가 얼마나 많은데, 고작 감기 따위에.
이렇듯 저는 하필 생일에 감기에 걸려서, 태어나도 괜찮았는지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되는 날에 빌빌거려서 더욱 위기감을 느꼈더랬습니다.
아이러니가 아니에요. 생일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죠.
아무나 걸릴 수 있고, 한 번 걸렸다고 다시 안 걸리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가요.
마음의 감기를 꽤 오랫동안 앓아 왔습니다. 고작 감기 따위에, 거의 평생을 빌빌거렸습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서.
삶은 참 고약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보여주지 않거든요.
훗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 일이 있어서 지금 내가 이렇게 되었지'하고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살라고 합니다. 뭔지 몰라도 그냥 살라고요. 닥치고 살다 보면 나중에 알게 될 거라고요.
이런 어이없고 억울할 데가 어디 있나요.
어쩌면 그 깨달음도 끼워 맞춘 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처음부터 의미 같은 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굳이 삶의 의미를 찾는 우리는...
"아무래도 그 시간 거기에 우리가 있는 걸 원치 않나 봐요."
며칠 전 아들을 주짓수 학원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은 바로 앞에서 신호가 죄다 빨간불로 바뀌고, 옆차가 갑자기 끼어들고, 기차가 길을 막는 등 아주 난리 블루스였습니다.
1분만 더 일찍 나왔어도 전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평소보다 5분 늦게 나와서 그렇지 하고 저는 자책했습니다. 어떻게든 제시간에 데려다주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제게 아들이 그러더군요.
'하늘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있는 걸 원치 않는가 보다'라고요.
만약 있다면 그게 운명인지 신인지. 그걸 믿는 게 착각인지 아닌지.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선택뿐이죠.
이 모양으로 아직 살아 있는 건 아마,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과 제가 내린 선택의 결과일 겁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자연과 타인의 영향. 타인이 내린 선택 또한 제 삶의 일부.
그럼 제가 내린 선택도 타인의 삶의 일부겠군요.
제가 아직 살아 있음으로써 저의 세 아이들이 태어난 것처럼.
만약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저 집단 환각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거대한 환상이어도 기왕이면 좋은 꿈을 꾸었으면 합니다.
그 소망을 위해 살아 있는 한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합니다.
뭐 대단한 것은 못해도, 나비 날갯짓만큼 작은 것이어도요.
남의 친절함이 좋았듯이 나도 친절해 봅니다.
남의 미소가 좋았듯이 나도 웃어 봅니다.
살아도 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혼잣말 주절거릴 만큼 주절거렸으니 이제 릴소 구상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