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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tis Nov 27. 2024

황사

아빠가 거실을 차지하고 계셔서 꼼짝없이 내 방에 갇힌 형은 내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누구랑 메시지를 주고받는지 그는 연신 전화기를 두드리면서 가끔씩 웃었다. 

책상 앞에 앉은 나는 숙제를 끝내고 내일 가져갈 교과서를 대충 훑어본 후 가방에 넣었다. 그런 다음 손목시계를 보며 수면시간을 계산했다.


“좋아. 10시니까 앞으로 7시간, 충분해.”


나는 형이 갖다 놓은 두툼한 요를 바닥에 반듯이 깔고 그 위에 베개와 이불을 놓았다. 내가 잘 준비를 하자 형은 줄곧 들여다보고 있던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었다.


“벌써 자려고?” 


“어.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 


“일찍 일어나서 뭐 하게.” 


나는 자리에 누우며 대답했다.  


“아침에 아빠 진지도 차려드려야 하고, 도시락도 싸야 하고. 그리고 이제부터 학교에 걸어서 갈 거라서.” 


“안 돼, 황사 불어. 버스 타고 가.” 


황사가 불든 말든 상관없다고 대답하려다가 나는 침대 쪽을 돌아보았다. 형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에 형으로서의 권위를 담아 말했다.  


“봄에는 걸어 다니지 마. 건강에 안 좋아.” 


나는 잠시 형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스르륵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 형은 더 이상 아무 소리 않고 불을 끄며 인사를 했다.  


“잘 자.” 


“형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어?’


얼굴 바로 위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잠이 깨었다. 

나는 바로 눈을 뜨지 않고 자는 척을 하며 상황을 살폈다. 옆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가 확인하고 있는 건가.’ 


형이 말하길 내가 어릴 적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숨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자면서 숨을 멈춘 기억은 없지만, 그날 꾸었던 꿈은 생생히 기억난다.  


- 여긴 어디지? 춥고 어두워. 그리고... 숨이 안 쉬어져..? 


꿈속에서 나는 깊은 바닷속에 있었고, 인간도 물고기도 아니었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어떤 포유류, 아마도 고래가 되었지 싶다. 

숨이 막혔던 나는 숨을 쉬러 수면 위로 올라갔다.  


- 푸하! 


- 솔아! 엄마, 솔이가 이제 숨 쉬어! 


내 옆에 앉아 있는 형의 놀란 얼굴, 문가에서 전화기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시는 엄마. 휙휙 부산스러운 광경, 웅웅 시끄러운 소리. 숨을 쉬는 것 빼고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꿈인지 헷갈리기 시작했고, 오히려 꿈속 세상이 더 선명하고 평화로운 것 같았다. 그래서 적잖이 실망했다.  


- 아쉽다.  


- 뭐? 너 우리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고래가 된 게 그렇게 좋았냐? 


- 숨을 쉬러 나오지 않았으면...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난. 


-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엄마는 한동안 자고 있는 내 얼굴 위에 손을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하셨는데, 이제 괜찮다 싶으셨는지 언제부터인가 그만두셨다. 더욱이 지금은 그런 상태.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엄마일 리는 없다.

아빠는 한 번도 이러신 적이 없고, 내 방에 거의 들어오지도 않으신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하나.  


‘형이구나.’ 


나는 계속 자는 척을 했다. 이 상황을 서로에게 들켜봤자 피차 멋쩍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추억거리도 아닌 걸 상기시키는 것도, 아직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들키는 것도, 우리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다.

  

조금 있으니 얼굴 위가 시원해지고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방문이 열리더니 밖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제야 눈을 뜨고 손목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 22분. 


‘일찍 나가려나 보네.’ 


빈 침대 위에 흐트러진 이불의 실루엣이 어슴푸레 보였다. 벌써 일어나 준비하는 걸 보면 형은 아마도 첫 열차를 탈 모양이었다.  


‘이렇게 일찍 나갈 거면 차라리 어젯밤에 돌아가지.’ 


나는 나지막이 신음을 뱉으며 일어나 앉았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형이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멈칫했다.  


“어우 깜짝이야. 깼어?” 


“어. 방금.” 


“불이라도 좀 켜지.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형이 불을 켜자 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눈을 비비며 옷을 갈아입고 있는 형에게 물었다.  


“아침은?” 


“가면서 사 먹을 게.” 


“금방 뭐라도 해줄 수 있는데.” 


“아냐, 더 자.” 


“어차피 아빠 진지 준비하러 곧 일어나야 해. 간단하게 뭐해줘?” 


“...... 아니.” 


“... 응.” 


형이 집에 있기 싫어하는 것 정도야 알고 있다. 어쩌다 한 번 와도 형은 얼른 가고 싶은 눈치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딱히 붙잡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텐데.’  


괜히 두 번이나 권했나 하고 후회하고 있는데, 형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 솔아.” 


“응?” 


“나 한동안 집에 안 와.” 


“... 어.” 


이미 알고 있는 일인데 뭘 새삼스레, 그것도 이렇게 심각하게 말하나, 뭐 다른 의도가 있나 싶어 나는 형의 얼굴을 살폈다. 뭐라 단정 짓기 힘든 표정이었다.  


“한 시간쯤 전에 엄마 화장실 가시는 소리 들었어.” 


“...... 그래.” 


“아침에 가지 않아도 돼.” 


“... 응.” 


형은 그 묘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성큼 다가와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갖다 대었다.  


- 괜찮아, 솔아. 괜찮아.  


떨고 있는 작은 손을 꼭 잡은, 조금 더 큰 손. 살짝 열린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고함소리는 우리 형제의 가슴을 그렇게 찢어댔었다. 

 

- 괜찮아.  


젖어드는 내 눈 위로 자기 이마를 갖다 대며 괜찮다고 말하던 형은,  


“미안.” 


이젠 어째서인지 사과를 하고 있었다.  


“걱정 마. 난 괜찮아.” 


괜찮다는 말은 이제 내 몫이 되었다.   





형이 나가고, 아빠도 출근하셨다. 

나는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준비한 도시락을 가방에 넣으려는데, 도시락 쌀 시간에 좀 더 자고 오늘은 사 먹으라며 형이 주고 간 돈이 눈에 띄었다. 

나는 책상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있는 저금통을 꺼내 들었다. 대부분 지폐라서 그런지 지금껏 제법 넣었음에도 전혀 무거워질 생각을 하지 않는 그 저금통을 나는 괜스레 한 번 흔들어 보았다. 겹겹의 종이돈 사이로 몇 개 안 되는 동전들이 슬라이딩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머릿속으로 대충 얼마나 모았는지 계산해 보았다. 고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것치고는 꽤 모았으나 아직은 한참 이른 금액이었다. 제대로 모으려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테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실리 없었다.


‘나중에 학교 졸업하고 해도 되니까.’ 


사실 언제까지 해야 한다고 정해진 건 아니다. 그저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 뿐. 

나는 저금통에 형이 준 돈을 넣고 서랍을 닫았다. 그리고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방을 나섰다.  


차려둔 밥상이 그대로 있는 걸 몇 번 본 후, 난 더 이상 엄마를 위해 밥을 차리지 않았다. 대신 밥솥에 보온상태로 밥을 두고, 반찬은 잘 보이도록 냉장고 앞 쪽에 두었다. 그것도 아니면 빵이라도 하는 마음에 식탁 한가운데에 식빵 봉지를 올려놓았다.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안방 문 앞에 가서 섰다.  


- 가지 않아도 돼.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볕이 닿지 않는 어둠이 블랙홀처럼 내 인사를 집어삼켰다.    





과연 황사 경보라더니 바깥공기는 딱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거리는 평소보다 한산했고, 나와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맨얼굴로 나온 나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일부러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둔한 자신을 속으로 비웃었다.  


‘이런다고 수명이 얼마나 줄어들 거라고.’ 


이렇듯 딱히 황사를 꺼리지 않는 나지만 벚나무 밑을 지날 때는 마음이 달랐다. 벚꽃이 만개했을 때만큼은 황사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싶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교실로 가기 전에 먼저 화장실로 향했다. 먼지가 폐 안에 쌓이는 것과 피부에 묻은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전자는 별로 개의치 않아도 후자는 왠지 께름칙하다. 어서 씻어야 했다. 

쏴아아아- 수도꼭지가 시원하게 내뿜는 깨끗한 물로 나는 얼굴과 손을 꼼꼼히 씻었다.  


“푸하.” 


고개를 들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마음에 안 드는 그 얼굴을 노려보며 페이퍼 타월을 뜯어 얼굴을 닦았다. 황사 먼지가 들어갔는지, 아니면 가끔 찾아오는 그 증상인지, 오른쪽 눈이 잠깐 따끔거렸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화장실을 나갔다. 

 

어제랑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는데, 걸어오느라 시간이 더 걸려서일까. 너무 일찍 와서 거의 사람이 없던 어제 아침과 달리 오늘은 복도까지 아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교실 뒷문에 들어선 나는 분명 내 자리여야 하는 그곳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어라, 내가 착각한 건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어제와 달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싶어 그 주변을 둘러보자, 맨 끝 자리에 어제 슬쩍 익힌 얼굴이 보였다. 그 아이는 앞자리에 앉은 또 다른 아이와 사이좋게 얘기 중이었다.  


‘아, 자리를 바꿨나 보네.’ 


선생님 허락도 없이 자기들끼리 저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조만간 이 자리도 바뀔 테니까. 앉은키가 들쭉날쭉인데 계속 이대로 둘 리 없었다. 

나는 내 자리로 가서 책가방을 내려놓으며 자연스럽게 그 새로운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 짝꿍은? 예뻐? 


왜 갑자기 형의 실없는 농담이 떠오른 걸까. 그 얼굴이 슬쩍 보기에도 예뻐서인가.  


“자, 조용. 다들 앉아.” 


담임 선생님의 호령에 교실은 질서를 찾았다. 미소 띤 얼굴로 학생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시던 선생님의 눈길이 한 곳에서 멈추었다.  


‘걸렸다.’ 


당장 원래대로 자리를 바꾸라고 따끔하게 혼내시겠거니 했는데, 선생님은 의외로 별말씀 없이 넘어가셨다.  


“후우...” 


옆에서 그녀가 아주 조그맣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꽤 긴장했던지 가녀린 숨소리에 떨림이 묻어났다. 

뜬금없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뭐지?’ 


뭔가 이상했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찾아옴과 동시에 교실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다들 앞으로의 1년을 위해 친목을 도모하느라 바빠 보였다. 

나는 손에 턱을 괴고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초점이 점점 흐려지면서 시야가 뭉개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날처럼, 떠들썩한 현실이 현실감을 잃고 있었다.  


이제는 버릇이 되어 버렸다. 시야를 흐리고 숨을 점점 약하게 하면 마치 내가 이 비현실적인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난 이 묘한 기분에, 온몸에 퍼져나가는 달콤한 독과도 같은 이 느낌에 중독되어 버린 거다.  

언젠가 형이 읽다 말고 펼쳐놓은 책에서 동사하기 전 사람이 느끼는 감각을 단계별로 적어 놓은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바늘로 온몸을 찔리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나른해지기 시작하는데, 그건 마치 미지근한 우유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랬다.

우유에 담근 쿠키처럼 흐물거리며 녹아 사라지는, 그런...


“저기!” 


누군가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비 맞은 수채화 같던 시야가 또렷이 돌아왔다.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옆자리의 그녀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쉬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왜?” 


“저기, 그러니까...” 


그녀가 뜸을 들이는 바람에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정면에서 본 그녀는 과연 예뻤다. 어깨까지 오는 진한 갈색 생머리, 하얗고 갸름한 얼굴, 긴 속눈썹이 드리운 동그란 눈,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 반듯한 코 밑에 살짝 작다 싶은 그 입은 마치...  


‘벚꽃 같아.’ 


제멋대로 떠오른 생각에 깜짝 놀라 나는 얼른 밑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어제 형이 괜한 소리를 해서 그렇다고, 애꿎은 형 탓을 하며 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러다 상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눈을 돌리는 건 실례다 싶어 다시 시선을 바로 했다. 그녀는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잘근 씹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기다리며 계속 보고 있자니 그녀의 얼굴에서 봄이 느껴졌다. 

화사하고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수줍게 피어난... 


“숙제 좀 보여줘.” 


“......” 


드디어 이어진 그녀의 한 마디는 그 모든 봄의 환상을 빛바래게 했다. 

마치 황사 바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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