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utis Dec 20. 2024

첫사랑

저벅저벅저벅.

자박자박자박. 


“... 후우.” 


탁.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라오던 아랑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응?” 


“왜 따라와?” 


사과도 했고,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도 교환했고, 일요일에 만나기로 약속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네 집 이쪽 아니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아랑이 조금 놀라며 물었다.  


“너 버스 타고 가는 거 몇 번 봤어. 그 버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잖아. 저기 공원 쪽으로.” 


“으음~ 날 봤다고?” 


“아니 우연히... 왜?” 


“그냥~ 헤헷.” 


아랑은 배시시 웃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멍하니 서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그녀가 정작 내 물음에는 하나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급히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잠깐만, 그래서 왜 따라오는 건데?” 


“너 따라가는 거 아닌데? 이거 봐. 네 앞에 가고 있잖아.” 


아랑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면서 보란 듯이 양팔을 벌리고 한 바퀴를 돌았다. 나는 보폭을 늘려 금방 그녀를 따라잡았다. 텁텁한 지하도 공기에 달콤한 잔향이 흘러들어 있었다. 그녀의 옆에서 걸음걸이를 맞추어 걸으며 나는 슬쩍 곁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윤기 나는 갈색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산뜻하고 달콤한 꽃향기를 흩뿌려댔다.  


‘샴푸... 좋은 냄새.’ 


향수처럼 의도가 뻔하고 작위적인 향기보다 이런 자연스러운 냄새가 좋다. 아니, 이것도 인공적인 향이니 자연스러운 건 아닌가. 그저 착실하게 생활 루틴을 지켰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호감 포인트가 얹히는 거. 그런 걸 뜻하는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게 좋다.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좋은 것, 본인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타인은 쉽게 찾을 수 있는 매력. 그런 게 진짜 매력 아닐까.  


‘... 아차.’ 


샴푸냄새에 정신이 팔려 또 잊을 뻔했다.

   

“그럼 왜 이리로 가는데?” 


내가 묻자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벚꽃. 버스 타고 가면서 봤는데 이 앞에 벚나무가 많이 보이길래.” 


“아...” 


“이제 활짝 피었지? 맞지?” 


“어. 근데 오늘 비 맞아서 좀 졌을지도.” 


“아, 맞다. 비 왔었지... 그럼 더더욱 오늘 보러 가야지!” 


아랑은 초등학생 꼬마처럼 가방끈을 꼭 잡고서 깡충 뛰었다.   


“... 벚꽃 좋아해?” 


“응? 예쁘잖아.” 


“응.” 


“예쁜 거 다들 좋아하지 않아?” 


나는 다시 한번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다.  


걷다 보니 어느새 계단에 다다랐다. 아랑이 먼저 올라갔고, 나는 말없이 두 계단 뒤에서 그녀를 따라갔다.  


“거의 다 왔다!” 


신이 난 아랑이 저 앞에서 비쳐오는 밝은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빛을 등지고서,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해?” 


“뭐야, 자신만만하게 가길래 아는 줄 알았더니.” 


“헤헤. 내가 좀 길치라서.” 


“원래 그렇게 모르는 길도 무턱대고 막 나가? 위험하잖아.” 


“음~ 그래도 곤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걸?” 


“네가 곤란하지 않았던 건 대신 누가 곤란했던 게...” 


“그래서, 어디냐고!” 


나는 지하도 출구 뒤쪽에 있는 아파트 단지 입구를 가리켰다.  


“저기로 들어가서 죽 길 따라가면 돼. 외길이야.” 


“좋았어, 가자!” 


“응, 잘 가.” 


막 뛰어나가던 아랑이 놀라서 나를 돌아보았다.  


“넌 안 가?” 


“어.”

 

“넌 어디로 가는데?” 


“이 도로 따라서 쭉.” 


나는 방금 지하도로 건넌 그 도로의 사거리 쪽을 가리켰다. 집으로 가는데 꼭 옆동네를 가로질러 갈 필요는 없었다. 방향은 같으니까 도로변 길로 가도 된다. 비록 지금껏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아랑은 고개를 쭉 빼고 사거리가 있는 쪽을 보더니, 내가 한 것처럼 엄지로 뒤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치만 이쪽으로 가도 되는 거지?” 


“응. 하지만 이쪽으로 가도 돼.”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사람. 정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두 엄지. 양쪽 다 고집을 부리며 꼼짝하지 않았다. 좀 더 놀리고 싶었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기에,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손을 흔들었다.  


“그럼, 꽃구경 잘하고 가.” 


내가 막 돌아서는데 그녀가 내 교복 스웨터를 붙잡았다.  


“같이 가.” 


“어?” 


“무슨, 여기까지 왔는데! 기왕 같은 방향으로 갈 거면 같이 가줘야 하는 거 아냐?” 


“아까는 나 따라온 거 아니라ㅁ...” 


“아, 그냥 좀! 같이 가!” 


아랑은 이제 막무가내로 날 끌기 시작했다. 


“야, 옷 늘어나...” 


나는 할 수 없이 끌려가 주었다. 생각보다 악력과 팔힘이 세서 스웨터가 걱정된 것도 있지만, 낑낑대며 잡아 끄는 모습이 왠지 그래줘야 할 거 같아서였다.  


‘새끼 강아지 같아. 안 끌려가면 울까나.’ 


생각보다 쉽게 끌려서 뿌듯했던지, 아랑이 내게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그래, 우는 것보단 저렇게 웃는 게 낫지 하고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끄는 사람과 끌려가는 사람, 우리는 그렇게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그 이후로도 열 걸음 정도 걷고 나서야 아랑은 비로소 날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우리는 나란히 향나무 길을 걸어갔다.  


“근데 너 키 몇이야?”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아랑이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최근에 안 재봐서 모르겠네. 대략 178cm? “ 


“힉! 나보다 15센티나 더 크네.” 


“그야 난 남자니까.” 


“그래도! 나도 키 크고 싶다. 뭘 먹고 그렇게 큰 거야?” 


“... 밥?” 


“야, 밥은 나도 먹어.” 


“라면?” 


“뭐야, 인스턴트 먹으면 키 안 큰다고 하던데. 그거 다 거짓말이었어?” 


“뼈는 확실히 약해지는 거 같아.” 


“아하하, 뭐야~ 그런 걸 어떻게 알아.” 


“... 의사들이 그러던데.” 


- 어머니, 너무 인스턴트만 먹이시면 뼈가 약해져요.  


4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이 지긋한 한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핀잔을 주셨다. 그때 엄마는 말없이 웃으셨지만 당황한 기색을 숨기진 못하셨다.  


“아무튼, 키는 환경적인 요인도 중요하지만 뭣보다 유전...” 


“조용히 해.” 


아랑이 얼굴을 찌푸리며 원래도 좀 낮은 목소리를 더 낮게 깔았다. 그래봤자 위협은커녕 하찮기만 한데. 나는 피식 웃었다.  


“근데 네 키가 왜? 여자로서는 딱 좋지 않아?” 


“아니.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어, 한 이 정도?” 


아랑은 까치발을 하고서 자신의 희망 키높이까지 손을 올렸다. 대략 170cm 정도로 보였다.  


“그렇게 크면 나중에 하이힐 못 신잖아.” 


“어째서?” 


“보통 여자친구가 자기랑 비슷하거나 커 보이는 건 싫어하지 않을까?” 


“그런가? 그럼 키 큰 남자 만나면 되지~”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저 앞에 벚나무가 심어진 주차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아~!” 


탐스러운 분홍빛을 보자마자 아랑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갔다. 그녀는 홀린 것처럼 위를 쳐다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 넘어져. 위만 보지 말고 밑에도 좀 보고 다녀.” 


오래된 아파트 보도블록이 여기저기 떠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넘어지기 십상인데, 내 경고에도 아랑은 여전히 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한눈을 팔아.” 


“한눈이라니. 꽃이랑 바닥, 대체 어느 쪽이 한눈파는 거냐...” 


바닥에는 꽃잎이 아침보다 더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꽃이 많이 남아 있구나, 나는 자그맣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한 나무 밑에 멈춰 서서 잠시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누워서 보면 정말 예쁠 텐데.’ 


그때였다.  


“아, 예쁘다~ 누워서 올려다보고 싶어.” 


“뭐..?” 


그녀의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린 순간,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흔들었고 꽃잎이 날리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꽃잎의 향연, 그 안에 그녀가 있었다.  


-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질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 


마치 피아노 음색이 색채가 되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은 느낌. 그것을 단어로 바꾸려는 의식적인 행위를 거부한 채, 나는 곧 사라질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에잇! 아, 쉽지 않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랑이 허공에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  


“뭐 해..?” 


“뭐 하긴. 꽃잎 잡고 있지.” 


“왜?” 


아랑은 정말 모르냐는 듯이 내게 되물었다.  


“몰라?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거?”


“어?”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일까.  


“진짜 몰라?” 


“정말 그런 게 있다고?” 


“어. 단풍이라든지 꽃잎이라든지, 버전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무튼 떨어지는 거 잡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대.” 


어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근거도 없는 소릴 믿는 걸까. 아니, 애초에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걸까. 나는 봄바람도 견디지 못하고 맥없이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그 빈약한 발상에 일침을 놓았다.  


‘자기 몸도 지키지 못하는 꽃잎이 무슨 소원을 들어준다고.’ 


게다가 뭐, 사랑? 격렬한 사랑의 감정은 그저 화학의 장난, 종족 유지를 위한 프로그램의 일부일 뿐인데. 거기에 속아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고 혼인서약을 한 커플이 헤어지는 일은 실제로 부지기수다. 일단 결혼에 성공하면 에너지 효율적인 뇌가 더 이상 필요 없는 화학물질을 만들지 않게 되고, 그럼 설령 이혼까지는 안 가더라도 권태기 속에서 의리와 믿음으로 남은 세월을 버텨가는 게 대부분의 부부생활이라던가.

그런데 뭐, 첫사랑? 처음 느껴보는 미숙한 사랑의 감정, 그거야말로 지금 떨어지는 이 꽃잎처럼 연약하고 가장 위태로운 사랑의 형태잖아. 그래 뭐, 이해는 한다. 사랑 중에서도 특히 첫사랑은 애틋한 이야기로 수도 없이 포장되어 왔으니까. 환상을 품는 게 당연하겠지.

 

나는 여전히 아무 소득도 없이 꽃잎을 쫓고 있는 아랑에게 별 뜻 없이 물었다. 

 

“첫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어?” 


아랑이 나를 돌아보았다.  


“첫사랑. 이루어졌으면 좋겠냐고.” 


“그야 다들 바라는 거 아냐?” 


아랑은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날 쳐다보더니, 갑자기 당황하며 구구절절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껏 누구랑 사귀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고, 예전에... 그래, 초등학교 때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야 초등학교 때니까 무슨 사랑이라고 하기엔 좀 너무 어렸달까. 내가 말한 첫사랑은 제대로 된 첫. 사. 랑. 을 말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어렸을 때 소꿉장난 같은 건 해봤다고.” 


“어.” 


“... 어?” 


“으응.” 


“... 됐어.” 


포기한 건지 삐친 건지, 아랑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아까 학교에서도 그렇고, 지하도에서도 그렇고, 역시 놀려먹는 재미가 있었다.   


“걱정 마. 나도 아직 그런 경험 없으니까.” 


“아니, 난 있다니까.” 


“그럼 뭐 하러 그렇게 잡으러 다녀?” 


“......” 


아, 안돼.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풉, 아하하하하. 아, 미안.” 


“너 진짜 싫어.” 


뾰로통한 얼굴로 돌아서는 그녀에게 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미안. 근데 정말, 아직 경험이 없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난 오히려 지금도 이르다고 보는데.” 


“어?” 


“누굴 사귀는 거.” 


“정말?” 


“응. 난 지금껏 누굴 좋아한 적도 없는걸.” 


아랑이 입을 떡 벌렸다.  


“우왁, 너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이야? 아니지, 역시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거...” 


“네네. 그래서, 벚꽃잎 잡고 싶어?” 


우리는 위를 한 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마주 보았다. 아랑이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꽃잎 잡기 미션은 듣느니 처음인 만큼 나는 룰을 먼저 확인했다.   


“뭐가 됐든 본인이 잡기만 하면 되는 거지?” 


“아마도..?” 


나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어 펼쳤다.   


“이거 써.” 


“어?” 


아랑은 우산을 받아 들고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비 오는 날 쓰는 것처럼 우산을 들었다.  


“아니, 이렇게.” 


나는 그녀와 함께 우산 손잡이를 잡고서 안쪽이 위로 향하도록 했다. 마침 바람이 불었고, 하늘색 우산 안으로 꽃잎 몇 개가 떨어졌다.  


“와아!” 


꽃잎을 본 아랑이 환호성을 질렀다. 문득 너무 가깝다 싶어 나는 얼른 잡고 있던 손... 잡이를 놓고 두어 발짝 옆으로 떨어졌다. 먼지라도 들어갔는지 코끝이 간질거렸다.   


“이제 됐지?” 


그녀는 흐뭇하게 꽃잎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근데 이래도 되는 걸까?” 


“왜 안돼?” 


“너무 쉽잖아.” 


‘아, 그런 거구나.’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시대를 통틀어 오랫동안 널리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온 믿음. 무너뜨리지 않고 돌탑 쌓기나 일곱 개의 드래곤볼 모으기 등, 미션의 내용은 달라도 모두 하나의 공통된 믿음에서 비롯된다. 아주 적은 가능성이라는 링을 통과하기만 하면 노력은 반드시 소원성취로 보상받으리라는, 설령 그 노력의 내용이 소원과 전혀 상관이 없더라도 분명 그러하리라는, 일종의 미신. 이 꽃잎 잡기도 그런 거겠지. 

이런 미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션이 쉬워서는 안 된다. 미신에 기댈 정도의 소원이라면 당연히 이룰 가능성도 적을 터, 그런데 미션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주로 미션은 어렵기 마련이다. 역으로, 이러한 패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설령 같은 결과를 내더라도 그 과정이 쉬우면 안 될 거 같은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거다. 

 

나는 걱정하는 아랑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새로 꽃잎을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끝내 잡지 못하고 속상해하는 걸 보는 것도 싫었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 나는 슬쩍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럼 이건 어때?” 


“응?” 


그리고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어 아랑의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렸다. 그녀가 움찔하며 내 손을 돌아보았다.  


“이거. 네 머리에 붙어 있었어.” 


아랑은 내 손에 들린 꽃잎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머리카락이 힘겹게 붙잡고 있었던 거니까, 이건 괜찮은 거지?” 


그녀는 조심스레 꽃잎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그 꽃잎을 바라보았다.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하려는데, 그녀의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피어났다.  


“고마워.” 


흐드러지게 핀 탐스러운 꽃송이.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꽃잎과 살랑이는 머리카락,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한 향기.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현실감을 잃고 그 미소 속으로 녹아들었다. 건 마치... 


“......” 


나는 말로 떠오르려는 생각을 가만히 가라앉혔다.  


따뜻한 봄바람이 얼굴에 닿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진작에 다 나았을 가슴이 갑자기 욱신거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