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살아갈 세상

by Outis

어느 날 아들이 물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커서 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음..."


저는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와 장래 전망에 대해 얘기했던 게 처음이 아니었기에 답은 곧바로 나왔죠.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네."


'네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온 세상과 다르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나로서는 짐작도 안 간다. 미안하지만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거다. 네가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같이 알아보고, 어디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찾아보자.'가 제가 지금껏 취해온 태도였어요. 아이 입장에서는 꽤 막막하겠다 싶었지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습니다.


이처럼 돌아오는 건 실망스러운 대답임에도 아이는 제게 똑같은 질문을 간혹 묻곤 했습니다. 혹시 제게 무슨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떠올랐나 기대했던 걸까요. 이제 중학생이니 진로에 대해 한창 고민이 깊어지기도 할 겁니다.


아이의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의 실타래에서 튀어나온, 익숙하지만 어려운 질문. 그날따라 생각이 많아 보이길래 저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 소위 잘 나가는 직업들은 죄다 AI가 대체하게 될 거야. 제일 먼저 대체될 분야는 아마 법조계랑 데이터 분석... 프로그래밍도 AI가 더 잘할 거고, 의사도 그래. 생산은 이미 기계가 많이 대신하고 있고, 그럼 뭐가 남으려나. 예술? 그림은 벌써 AI가 웬만큼 따라잡았고, 음악도 머잖아 곧..."


아, 제가 늘 그렇듯이 꿈도 희망도 없는 미래가 그려졌습니다. 아들의 표정이 복잡해지는 게 보이더군요. 미안하지만 어쩝니까. 그게 현실인데.

하지만 거기에서 끝내진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추상적인 한 가지를 덧붙였지요.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사람을 위한 일을 하면 된다는 거. 사람들을 돕고, 사람들의 생활을 더 좋고 편하게 해주는 일. 넌 그런 일을 해."


아들은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를 닮아 사회성이 부족하고 비관적인 아들은 평소에도 '난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오히려 혼자가 낫다.'는 오만한 말을 툭툭 내뱉습니다. 전 그럴 때마다 노파심에 말하곤 하죠.


"해 봐라 어디. 하나부터 열까지 너 혼자서 얼마나 할 수 있나.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그 옷도 못 만들걸? 불도 못 피워서 추우면 얼어 죽을 지도. 너 혼자서 전기가 있냐 뭐가 있냐. 지금 네 주변에 있는 것, 네가 누리는 것 이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노고가 있는지, 넌 모르지?"


아, 이런. 나름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말한 건데, 특유의 비꼬는 어투가 나와버렸네요.


"엄마, 저도 알아요. 그냥 농담이었거든요?"


"감사하란 소리야.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네 일상이 돌아가고 있단 거, 놀랍고 감사할 일 아니니."


그래도 어찌어찌 좋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고, 사람을 위해 살아라.'


아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이것이 그 아이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고, 힘겨운 삶이 굴러가게 돕는 윤활유가 되고, 비관에 기울어 좌절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무게추가 되어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이것이 아주 뜬구름 잡는 헛소리가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내 식탁에 오른 밥, 내 하루를 깨우는 커피 한 잔, 내가 오늘 입은 옷, 이용한 교통수단, 손에 자석처럼 달라붙어 있는 휴대전화와 그 안의 모든 것, 짜증 나고 싫더라도 내 발길이 향할 수 있는 어딘가. 나의 낮과 밤을 지키는 누군가의 아들들. 내 오늘을 채운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한, 당신에게도 오늘은 그런 날인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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