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강 위를 걸으며

사는 맛 레시피(존버맛)

by 달삣

요즘 사태가 살얼음판이다.


온 국민이 확진자 이거나 확 찐자 (몸무게 확쪄버린 ㅡ나가지 못하는 이들이 집콕해서 요리해먹고 몸무게만 느는이) 둘 중 하나다.


마실 다니는 걸 좋아하고 약간의 폐소 공포증이 있어서 답답한걸 못 참는 친정 엄마도 요즘 꼼짝 못 하신다. 걱정이 되어 전화했더니 엄마의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크게 틀어놓은 TV 소리 전화기 넘어로 린다.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고 봄꽃도 궁금해하서 매년 딸들과 봄마다 한 번씩 가는 창경궁에 가자고 니 좋아하셨다.


"꼭 요즘 사는 게 뒤주 속 사도세 아 사도세자가 죽은 장소 창경궁의 선인문 앞 회화나무가 보고 싶다." 말씀하셔서 마음이 울적해졌다.


여동생들과 같이 만나서 점심을 먹고 창경궁으로 갔다.


수요일 평일은 인적도 드물었고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의 날이라 관람료도 무료였다.


창경궁에 들어서니 입구부터 홍매화와 흰매화가 예쁘게 피어있었다.


여동생이 " 야 벚꽃이 예쁘게 피었네"하 엄마와 사진을 찍으니 지나가는 분이"아닌데 매화인데"하며 지나간다.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정말 봄에 피는 하얀 꽃들은 비슷해서 그게 그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용케도 다 알아맞히신다.

이것은"앵두나무" 것은"찔레꽃"

"냉이꽃"잔디밭에 피어있는 냉이도 작고 앙증맞은 하얀 꽃을 피우는 게 신기했다.


선인문 앞 사도세자가 뜨거운 땡볕 아래 뒤주에 갇혀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회화나무는 괴로움에서인지 뒤틀려서 속이 텅텅 빈 모습이었다.


연두색이 올라오는 버드나무를 지나 왕자 생산지 통명전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오리가 자맥질하는 연못을 지나 나오는데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 의지 하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내 표지 판에'살얼음판 같은 궁궐 생활에 정조와 혜경궁 홍 씨가 서로 의지하며 버텼다'라고 하는 글귀가 있었다.


아버지이고 남편을 뒤주 속에서 죽게 하고도 살아남아야 했던 나날들을 생각하니 정말 살아도 살은 것 같지 않았을 것 같다.


살얼음판이라 하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20대 초반에 여주 신륵사 근처의 겨울 언강을 건넌 적이 있었다. 군데군데 얼음이 녹아 물속이 보이는 남한강을 왜 건넜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기 짝이 없는 경험이었다.


1월의 남한강이 꽝꽝 얼어 있다고 생각한 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소에 사는 게 살얼음판 같다고 해서 한번 오기로 건너보고 싶었다.


"정말 그럴까?" 건너고 나니 절대 안전하지 않은 겨울 강은 건너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건너기전 둑에 서서 강건너를 바라보니 저건너에 잎사귀 떨어진 큰 나무 두 그루와 빨간 지붕의 집이 보였다. 강 건너편의 빨간 지붕의 집까지 가기로 했다.


겨울 강 인적은 없고 매섭게 추었지만 나룻배와 배 젓는 노도 강물에 얼어있고 삐죽 나온 돌들 틈도'꽝꽝'얼어 보여 안심하고 신발미끌럼을 타며 한가운데 강을 향해 나아갔다.


그래도 한강이라고 꽤 멀었다. 가다 보니 강 한가운데 서게 됐는데 투명한 시퍼런 강물 바닥이 비치는 것 같고 군데군데 덜 얼은 곳도 있는 것 같았았다.치 허공의 흔들다리의 투명한바닥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었다.


여기서 무서워하면 안 될 것 같았고 담대하게 맘을 먹고 앞만 보고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금 간 곳이라도 밟았으면 어쩔 뻔 싶다.


앞으로가 어떨지 모르겠다. 사는 것이 살얼음판 같다고 하는 아버지 말이 실감이 났다.


오도 가도 못할 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사히 강을 건너서 건넌 강을 뒤돌아보니 다리가 풀렸다.


희망의 빨간 지붕은 더 멀리 있었다. 그래서 빨간지붕의 집은 눈에만 담고 되돌아 가기로 했다.


되돌아올 때 터벅거리며 다리 건너 강의 얼음판 니 고요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평소에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사는 게 살얼음판이라 말씀 처럼

인생은 원래 얼음판이고 생각이 든다.미끄러지거나 빠지거나 살살 걷거나다.


그러나

영화 작은아씨들의 장면처럼 옆사람이

얼음 구덩이에 빠지면 또 그옆사람이 나뭇가지를 대고서라도 구해줘야 하거나 정조와 혜경궁 홍 씨처럼 서로 의지 하며 가야 한다.


늘 현재에 감사하고 살뿐 미래는 신께 맡겨야 하지 않을까 한다. 또 삶과 죽음 중 삶은 현재고 죽음은 신의 영역이어서 어쩔 수 없으니 최대한 얼음판 강을 건너듯 조심스럽게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날 창경궁의 나뭇가지에 새이 명랑하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짹째르르 짹짹짹'

( 클림트 죽음과삶 )늘 삶은 죽음이 쫓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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