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어도 늘 편안 사람

사는 맛 레시피(늘 편안맛)

by 달삣

산해진미를 먹고 나서도 집에 와서 오이지에 찬물을 만 밥을 먹어야 속이 편했다.


더운 8월에 태어나신 엄마 생일에 동대문 앞에 있는 특급호텔 뷔페를 먹으러 가는 날 비가 억수로 많이 내렸었었다. 호텔 앞에는 흰 무궁화 꽃이 예쁘게 핀 날이었다.


코로나 시절이니 마스크에 열체크에 번거로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친정엄마의 생일을 늘 호텔 뷔페 순례이므로 눈 딱 감고 가기로 했다.


식구들끼리 따로 여행도 못 가니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여동생들이 추진하지만 난 뷔페 음식은 과하다 생각한다. 늘 많이 먹고 소화불량에 걸리고는 하기 때문이다.


여동생들과 여러 음식들을 먹어도

올여름은 곰팡내 나는 엄니 오이지가 제일 맛있었다.


엄마하고 있으면 오이지 물 마시는 것처럼 늘 속이 편안하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차탈 때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직업군인인 관계로 이사를 수시로 다녀서 어릴 적 기억은 버스 타고 기차 탈 때 이마에 기댄 차창이 기억이 많이 난다. 늘 차비 아낄 려고 엄마는 동생을 업고 내 나이를 속이고 두 살 아래라고 차장에겐 말하고는 했다.


"개는 아직 학교 가기 전이여 키가 커서 그러제" 사실 나는 국민학교 이 학년이었는데도 말이다. 1970년대는 이런 풍경이 많았고 차장 들은 그냥 속아 넘어 가줬다.


차장이 앞으로 가면 부끄러움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손에 잡히는 머릿니를 뽑아 차창에 두면 이가 '뽈뽈' 거리며 차 창가를 따라 기어갔다. 이가 기어가는 걸 시선이 따라가다가 멀리 하늘의 뭉게구름을 쳐다보고 있어도 세상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아이들 머리에 이가 많았는지 모르겠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머리를 긁어 댔었다.


아무튼 다른 친척들하고 여행을 하면 뭔가 부족하고 어색해서 기가 죽거나 말을 많이 하고 까불며 명랑한 척을 했다. 외삼촌과 산골 외갓집을 갈 때도 그냥 불안해서 "삼촌 얼마큼 남았어" 하고 되묻고는 했다. 큰아버지와 경부선 기차 타고 친가를 갈 때도 몇 번씩 멀미를 했고 막내 이모와 대전에서 서울 처음 올라왔을 때도 엄청 신기해하며 박수를 치며 오버했었다.


그러나 엄마와의 여행은 몽롱하고 아련한 기억이다. 아무 말 안 하고 얼굴만 봐도 편안한 관계가 부모와 자식 사이인 것 같다.


호텔 뷔페처럼 입에서는 순간 맛있고 단 화려한 음식을 먹어도 속 거북하고 편하지 않은 것이 어릴 때 엄마가 아닌 친척들과 여행할 때처럼 불안한 맛이었다.


엄마를 싫어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싫어하는 것과 편안함은 다른 거였다. 내가 엄마를 싫어해도 엄마는 나를 좋아하고 있어서 내가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싸우면 친구보다 나를 더 혼내서 계모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었다. 늘 "내려다보고 살아라 남들 한테 잘해라"해서 손해만 보고 사는 엄마를 보면 답답하고 안쓰러웠는데 엄마는 늘 쳐다보며 미소를 준다.


엄마가 해준 음식에서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여름 오이 지우린 물에서 느꼈는데 이젠 벌써 가을로 접어들어 엄마에게 김치 해달라고 졸라야겠다. 실은 나도 해 먹지만 말이다.

keyword
이전 04화훗 개두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