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사는 맛 레시피( 죽음의 맛)
입구가 있으면 반드시 출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통이 되고 숨을 쉬는데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 1973년의 핀볼'에 있는 문장 중' 대부분은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라고 희망을 노래하지만 또 다른 문장이 섬뜩하다.'간혹 입구는 있는데 출구가 없는 것이 있다 가령 쥐덫 같은 것...'
출구가 없고 입구도 막혀 있으면 되돌아 나올 수도 없고 그냥 죽음이다. 아니면 판을 바꾸거나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내소관이 아닌 하늘의 뜻인 운명에 달렸으므로 의지는 접어야 한다. 덫에 걸리면 밖에서만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것에 펀치를 하도 맞아서 넉다운이 되는 날이면 이상하고 묘한 꿈을 꾼다. 높은 곳에 올랐다가 아래 사다리 같은걸 타고 계속 내려가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미인을 만났는데 옆 사다리를 내려가는 것도 나비처럼 사뿐사뿐 내려간다. 마치 존 에버릿 밀레이의 그림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아 '그림 속 여인 같다.
죽음이 두려운 문어처럼 쭈글 한 나는 트로트 '용두산 엘레지 '가사에 나오는 부산 용두산 일백구십사 계단이나 설악산 울산바위를 오르고 계단 내려올 때의 후 달림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내려오다가 절벽 외길로 접어들었는데 길이 막혔다. 되돌아가려는 길도 샛별 같은 작은 구멍뿐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잠이 깨었다.
판이 바뀐 것이다.
운명이 살려주신 거다. 꿈속에서 죽고 아침에 다시 태어났다. 거기서 잠 깨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든다.
잠이 깨서 오필리아의 그림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숲 속 연못에 아름다운 여인이 물속에 누워있다.
그녀는 죽음의 덫에 걸려 있고 영혼은 빠져나가서 살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죽었다. 아름다운 여인들은 심연으로 내려갈 때도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가는지 꽃을 쥐고 육체를 옷처럼 물 위에 풀어놔줬다.
( 유화) 존 에버릿 밀레이의 오필리아
(유화) 들라쿠루아의 오필리아
예전에는 상갓집에 가면 '아이고아이고' 하고 슬픔에 공감해주는 대신 우는 노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그림은 요즘처럼 사람들이 이 세상을 많이 떠나가는 이 시대에 곡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들의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들이다.
곡비가 상갓집에서 슬프게 울어주면 떠나가는 영혼들은 고마워할 것 같다.
"나의 죽음을 슬퍼해 주다니 고맙군"
슬플 때는 같이 울어주고 기쁠 때 같이 웃고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고 공감하는 것이 살 때와 똑같이 육체를 빠져나간 영혼들도 위안이 될 것만 같다.
성경에도 있지 않은가 나는 슬픈데 기뻐하는 것은 상처에 소다 붓는 경우라고 했다.
'그래 지금 꿀꿀한 건 시절 탓이야. 그러니 이런 꿈을 꾸지 '아침이 되어서 어젯밤에 내가 죽음을 맛보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 아침에 햇볕 보는 것에 감사하며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