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시집간 막내 여동생에게 물건을 보내라는 엄마의 특명을 받았다.
곱창김과 말린 오징어 엄마의 쓰던 진주 목걸이 구슬 핸드백 등을 보내기 위해 서대문쪽에 사는 셋째 여동생과 함께 충정로 우체국으로 갔다.
코로나 시대이니 뭔가 물건 보내기도 조심스럽지만 엄마가 죽기 전에 딸들에게 쓰던 패물과 핸드백 등을 나눠주고 싶다고 해서 마지못해 왔다.실은 이런것이 우릴 쓸쓸하게 한다
엄마가 죽음을 언급할 때마다 마음이 안 좋은 것은 "너희들 나 있을 때 잘해라 하며 죽기 전에 쓰던 물건 나눠 주는 건 괜쟎아"하며 이별을 암시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딸 셋에게 엄마가 쓰던 옷 반지 시계 백등을 나눠줬는데 멀리에 있는 막내를 못줘서 늘 걸려했었다.
물건을 부치고 나니 마음도 헛헛하여 따뜻한 국물요리가 당겼다. 점심시간이라 ' 맛있는 녀석들'이 나왔던 우체국 근처 떡국 맛집에 갔다.
방문자 이름과 전화번호 작성 후 자리에 앉았다. 요즘 시대의 식당에서의 풍경이다.
매생이 굴 떡국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국물 요릿집이라 뿌연 김들이 실내에 서려서 먹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마치 오우삼 감독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하게 주변이 보였다.
마스크 낀 직장인들은 떡국이나 만둣국을 먹거나 휴지 위에 숟가락을 얹어 놓으며 나올 음식을 기다린다.
먹는 일은 늘 설렌다.
역한 냄새나 컵의 고춧가루 음식에서 머리카락 등이 나와서 한 번에 입맛 가시는 일들이 일어나기 전 까진 말이다.
자리가 나서 여동생과 구석에 앉았는데 하얀 마스크 낀 직장인들이 계속 들어온다. 마스크를 끼고 있다가 먹을 때만 마스크를 벗고 먹는데 마음이 짠했다. 하지만 먹어야 산다고 하기 때문일까 기분들이 좋아 보인다. 먹을 때 대화도 하고 표정이 밝다.
예전에는 가족들 먹는 것이 짠할 때가 있었는데 이젠 코로나가 장기화되니 내 주변의 이웃들도 짠해 보였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홀로 지내셨는데 남편은 주일마다 어머니 모시고 교회 들렸다가 점심밥을 사드렸었다.
한동안 주변 맛집을 검색하며 아들과 식사하는 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낙이 었는데 아프시니까 기력을 잃고 입맛을 잃으시더니 밥을 잘못 드시고 음식을 거의 남기다시피 하셨다.
남편은 어느 날 시어머니와 곰탕을 먹으러 갔는데 국물도 안 남기고 너무 잘 드셔서 맘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 말 들은 이후로 나에게도 그 느낌이 자주 온다
친정 엄마가 백내장 수술하고 뒤돌아서 밥 먹을 때 뒷모습에서 왠지 울컥했었다.
자식 입에 먹을 것 들어가는 게 보기에 좋다고 하는데 나이가 드니 부모님이 맛있게 식사를 하면 기분이 좋은 것이 인지 상정인 다보다.
솔직히 엄마와의 관계가 좋은 딸들은 드믄데 살아온 날들 중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아서 일게다.
나는 장녀로서 엄마의 고집과 행동을 이해 못해서 원망도 많이 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냥 불쌍한 마음이 들고 음식 하나 건네줘도 감사하다.
그런데 이젠 나를 포함한 이웃들의 불편한 식사에 마음이 마음이 안 좋아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동생이 "아주머니 그냥 떡국 포장해주세요 하며 화상으로 수업하는 고2 조카가 있는 여동생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떡국이 부를 건데" 하니
여동생도 집에 있는 딸의 점심이 걱정되었나 보다
"가는 도중에 알맞게 식을 거야"
떡국 집 식당 문을 나서며
빨리 코로나가 물러나 맘 놓고 마스크 벗고 모두 편하게 먹는 날이 왔으면 하고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