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삣 Mar 16. 2021

 내가 만난 라떼 선생님

사는 맛 레시피


 일생에 여러 선생님을 만났다.


그중에 꿈을 꺾는 선생님도 있었고 꿈을 심어준 선생님도 계셨다. 특히 학교 선생님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중1 때 이 없어서 담임이 교복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미술 선생님이셨는데 요즘 부쩍 생각이 나서  화가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돌아가신 걸 알았다. 


출석부 머리 스매싱을 기가 막히게 하셨는데 한번 찍혀서 출석부 스매싱을 수시로 당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조금 충격적인 장면이다. '저렇게 자애로운 선생님이 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미워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도 51세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으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나에게 인생 불행의 그림자는 중1이었다. 국민학교 때는 엄마가 옷도 양장점에서만 맞춰서 주고 그림으로 인정도 받을 때여서 행인 시절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은 나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국민학교 때 경기도 내에서 대상도 받아서  자부심도 대단히 컸었다. 크면 화가가 돼야지 하며 꿈을 키우던 시절이기도 했다.


 중학교에 올라 가자 마자 아버지의 실직과 엄마의 빚잔치로 집안이 경제적으로 곤두박질 칠 때라서 교복 살 돈도 없었다. 교복이 없어서 쩔쩔맸을 때 담임 선생님이 선배 교복을 구해다 줬었다.


 담임은 경제적인 것은 도움을 줬는지는 모르지만 그림을 인정을 안 해줘서 나의 그림의 꿈이 무너진 시기이기도 했다.



국민학교 6학년 생활기록부만 유심히 애정을 담고 봤다면 이아이의 꿈을 발견하고 힘을 줬을 텐데 미술반 뽑아갈 때 은근히 기대했지만 담임은 그러질 않았고 의 자신감은 급속도로 떨어졌고 성적도 떨어졌다.


그때 임이 "그림 잘 그리는걸 현실이 힘들어도 계속 그려봐" 한마디만 했더라면 그림의 꿈은 좌절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선생님은 수학의 꿈을 접게 한 또 한 명의  수학선생님 이셨는데 주로 자습을 잘 시켰고 점심시간 후에  교실 뒤에 앉아

 " 야 바늘 있냐 이쑤실려구 하는데"

"없는데요"싸늘하게 대답하면

"무슨 여자애가 바늘도 없냐"

 하며 한심하게 쳐다보며 옆에 애에게 바늘을 얻어서 쭙쭙 거리며 이빨 쑤시던 그 선생님은 내가 만난 최악의 선생님이다.


 하지만 멋진 선생님도 계셨다.

문학에 대한 꿈을 심어준 국어 선생님이 계셨는데 국문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갖게도 했다. 국어 선생님은 교과서보다 경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문학이라는 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노을이 붉게 물든  다음날이면  새벽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었어, 돈이 없는 대학생은 친구와 역사 울타리 개구멍으로 기차를 타고  무작정 남쪽으로 갔어  그 당시는 무전여행이 가능한 시절이었어 전쟁 직후라 조금 사회분위기가 헐렁한 시기였거든 , 걸어서 걸어서  남의 집 무도 뽑아먹고 하며 파란 바다를 봤지만 며칠을 굶으니 배가 너무 고파 쓰러 질 것 같더라고  어느 시골집을 기웃거리다가 한집에 싸리문을 열고 들어갔거든 ,


'밥 좀 주세요 배고파요 '하니까 노파가 꼬제 제한 우리 몰골을 보고는 위아래로 훑더니 거지인 줄 알았나 봐, 노파가 말없이 마루에  쉬지 말라고 걸어 두었던 까만 바구니를  치니  보리밥을 덮고 있던 무수한 파리떼들이 흩어졌어 지금 같으면 못 먹겠지만 그것도 진수성찬으로 보이더라고,


보리밥에 찬물을 말아 텃밭에서 싱싱한 고추를 말라 비트러 진 된장을 찍어 먹으니 세상 그렇게 꿀맛 더라고 정신없이 먹었지


서울로 돌아와 그 꿀맛 보리밥을 못 잊어서 물 말은 보리밥에  된장에 찍어 먹으니  맛이 나데, 왜 그럴까는 여러분이 생각해보세요" 말하셨는데 수업 끝나는 종이 울렸다.


 선생님의 기차 무전여행 같은  이야기 들으려고  아이들은 국어시간을 기다렸었다.


반면 수학 시간은 흥미를 점점 잃어갔지만 그 당시는 바늘로 이쑤시던 수학선생님보다  내게는 나의 꿈을 알아채지 못하고 이끌어주지 못했던 담임인 미술 선생님이 더 미웠다.


 지금 생각하면 교복 구해 준 것만으로도 무지  감사한 일이지만 그림 소질을 알아주지 않는 임에게 존경심을 느끼지는 못했다.


아니면 정말 그림은 소질이 없어서  일찍 감치 접어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림은  재료비와 학원비등 돈이 있어야 그린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분인 것 같다.


직장생활 후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누드 크로키를 배우며 그림의 꿈을 다시 키우기 시작했는데  화단에서도 유명한 그 선생님은 그림을 칭찬해주고 기다려주셨다.

"그림은 계속 그리는 거예요 나도 언제나 그림 같은 그림 그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전시회도  껴주고  " 감각 있어요 열심히 그려봐요"그 한마디가 그림을 계속 그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최고의 선생님은 꿈을 키워주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10화 와리 가리한 날의 토마토 부추 겉절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