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흘러가는 날

사는 맛 레시피

by 달삣

그런 날이 있다.


모든 게 지루할 정도로 서서히 흘러간다.


마치 담배연기 가득한 bar에서 싱글몰트 위스키 한잔 하며 앉아 있고 무대에는 빨간 립스틱 바른 쇼트커트 재즈 연주자가 느린 악보의 트럼펫을 불고 있는 걸 바라보는 느낌인데 실은 오후이다.


주위에 사람들이 느릿느릿한 슬로우 비 디오처럼 흘러가는 오우삼 감독의 영화 속 같은 날이다.


이런 날은 긴장되어 기다리던 일들을 끝내서 무너져 앉아도 되는 날이다.


이젠 날카로운 연필촉처럼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되고 무딘 칼로 참외를 깎아도 짜증이 안 나고 괜쟎다.


횡단보도 신호 기다리는데도 일만년처럼 느껴지고 버스는 왜 이리 늦게 오는지 막 앞차 떠난 자리에서 건너편 간판을 쳐다본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는 서너 명의 토끼 인형 든 아가들이 천천히 걸음마를 띠며 걸어서 앞서 갈 수 없는 발걸음을 만든다.


조심 스레 한 발짝 걸음을 옮기는

그 아가 들을 밀치고 가는 것은 범죄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뒤따라 천천히 걷는다.


동네 고물상 아저씨의 치즈 고양이가 느리게 앞발을 혀로 핥고 있고 꽃집 빨간 달리아 꽃들도 오후 햇볕에 졸고 있다.


느린 오후 흐린 전등 빛 같은 해를 등지고

사람들이 집으로 길게 돌아가는 중이다.

이런 날은 마음이 풀어져 수평이 되는 날이다.


길고양이 천천히 차 밑으로 몸을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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