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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해도 부실한 데로 살아가야지

사는 맛 레시피(짠맛)

by 달삣

각자 생활의 루틴이라는 게 있다.


우리 집은 한여름이 지나면 포도를 사는 농원이 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매년 그랬던 것 같다. 여름이 지난 이맘때 포천 근처 포도 농원에서 포도를 사서 포도주도 담고 형제들과 나눠먹는다.

포도를 사러 갔는데 올해 포도는 지난해에 비해 영 비실하 다. 송이도 작고 듬성듬성한 가지에 포도열매가 달려있고 맛은 단맛도 신맛도 매력이 없고 전체적으로 싱거운 것 같다.


포도밭주인은 여름 날씨가 사나워서 그랬다고 한다. 그래도 내게 내어준 너의 손이 고맙다.

화덕 같던 여름이 얼마나 덥던지 응급처치처럼 얼음팩을 끼고 살았었다.


나쁜 뉴스는 늘있지만 유난히 칼부림 같은 안 좋은 뉴스 때문에 여름이 더 덥게 느껴졌었다.

그래도 매미가 사라지고 가을비가 내리니 초록이 잦아든다.

모처럼 한가롭게 앉아 비 내리는 텅 빈 창을 바라보니 부실하고 허술해도 세월은 간다.

앙상한 가지에 구멍 성성한 나름의 열매 맺은 포도알을 보니 기특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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