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雨有感 가을비 내리니 느낌이 있어 / 申欽 신흠
齋居眞似定中僧 한가롭게 사니 참으로 참선하는 스님 같고
萬事如今百不能 세상만사가 이제는 모두 자신 없다네
世路誰分涇與渭 세상길에서 어느 누가 경수 위수를 분간하랴
人情秪是愛還憎 인정은 오로지 사랑과 미움뿐이라네
西風落葉迷三逕 서풍에 떨어진 낙엽으로 세 갈래 길 희미해지는데
永夜淸香伴小燈 긴 밤 맑은 향기 속에서 작은 등불 벗한다네
老去漸知知己少 늙어가니 나를 알아주는 벗이 적음을 점차 알겠고
故溪何處有漁罾 옛 시냇가에는 그 어느 곳에 고기 그물 있을는지
이 시는 조선 중기 문인이자 정치가인 신흠(1566년~1628년)의 시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한가한 생활 속의 평온함, 인생의 허무,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자각이 교차함을 말하고 있다.
수련에서는 한가롭게 생활하니 스님과 같은 마음임을 말하고 있다. 스님처럼 마음의 평온함은 단순한 초탈이 아니라, 세상을 다 겪은 뒤에 찾아온 체념의 평온인 듯하다. 그리고 2구의 ‘모두 자신 없다네(百不能)’라는 말속에는 시인의 무력감과 인생의 덧없음이 배어 있다.
함련에서는 경수와 위수를 언급하고 있다. 경수와 위수는 황하 상류의 두 물인데 경수는 흐리고 위수는 맑아, 청탁(淸濁) 또는 옳고 그름을 가리키기도 한다. 시인은 여기서 세상이 혼탁해져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려운 현실을 탄식한다. 그리고 인간의 감정도 단순히 사랑과 미움으로 수렴될 뿐이라는 인식에는 인간사의 단순함과 허무함을 노래한다.
경련 첫 구에서는 가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으로 세 갈래 길이 희미해짐을 묘사하고 있다. 시 내용의 흐름으로 보면, 이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세상의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리고 둘째 구에서는 등불과 향기를 언급하며 시인의 고요하고 한가로운 생활 그리고 있다. 여기서는 세속의 길이 희미해진 자리에서, 시인은 오히려 단단한 평온을 누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미련은 나를 알아주는 벗이 적음을 말하고 있다. ‘지기(知己)’의 부재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단절을 넘어, 나를 알아주는 시대의 공감자가 드물다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 구의 ‘고계(故溪)’는 옛날의 순수했던 삶의 터전으로,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임을 말하고 있다.
이 시는 한 시인이 세월의 끝자락에서 맞이한 고요한 깨달음의 시다. 세상에 대한 분별심을 내려놓고, 고요와 향기 속에서 등불을 벗하며 자신을 비추는 장면은 다사다난한 세월을 지나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고 담담한 평안의 경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