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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日 중구일 / 李穀 이곡

by 노정

九日 중구일 / 李穀 이곡


九日黃花酒 중구일은 국화주 마시는 날인데

高堂白髮親 고당에는 백발의 모친 계시다네

遠遊空悵望 원유하고 있으니 공연히 서글퍼지는데

薄宦且因循 박한 벼슬 하며 또 돌아다니기 때문이라

秋雨荒三逕 가을비에 세 오솔길 황폐해지고

京塵漲四隣 서울의 티끌은 사방에 넘쳐흐르네

登高猶未暇 높은 곳에 올라갈 겨를이 없으니

極目恐傷神 눈에 보이는 것마다 마음 상할까 두렵네

이 시는 고려 후기의 학자인 이곡(李穀, 1298–1351)의 시이다. 詩題(시제)인 ‘九日(구일)’은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을 뜻한다. 중양절은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다.

이 시의 수련에서는 벼슬하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나 온 시인이 중양절에 국화주를 떠올리며,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상을 열어간다.

함련에서는 벼슬살이 때문에 떠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3구의 ‘遠遊(원유)’는 멀리 나와 있다는 뜻이고, 4구의 ‘薄宦(박환)’은 박한 벼슬을 의미한다. 즉, 별 볼 일 없는 벼슬을 붙잡고 고향을 떠나온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

경련에서는 ‘가을비에 세 오솔길 거칠어지고’, ‘서울의 티끌 사방에 넘쳐흐르네’라는 내용을 가져와, 그 풍경에서 자신이 중양절에 느끼는 감정을 강화한다. 이 부분은 바로, 고향으로 향하는 세 오솔길은 황폐해져 점점 멀어지고, 세속에 자신이 갇혀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미련에서는 ‘登高(등고)’를 언급하고 있다. 登高(등고)는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가 단풍과 국화를 즐기는 풍습이다. 이 부분은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王維(왕유)의 시 <九月九日憶山東兄弟(구월구일억산동형제>1)가 떠오른다. 중양절에는 높은 곳에 올라 단풍을 감상하고, 국화주, 국화전을 즐기며, 수유를 꽃을 꽂는 등, 여러 풍습이 있다. 그러나 타향에서 벼슬하는 시인은 이런 풍습을 즐길 여유가 없다. 그래서 중양절을 맞아 혹여 고향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서 마음이 상할까 두렵다는 말을 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벼슬살이의 고단함,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속세의 번잡함 속에서 느끼는 허무를 그리며, 名利(명리)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 <九月九日憶山東兄弟> 시 : ‘獨在異鄕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遙知兄弟登高處 偏揷茱萸小一人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 되어, 매양 중구절을 만나면 부모 생각 더하네,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 아득하게 알리라, 수유꽃 모두 꽂았으나 한 사람 모자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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