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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핀란드로, 조선족과 ‘삼숭’ 아저씨

by 양문규

모스크바서는 한국인이 하는 민박을 이용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이하 ‘상트’)에서는 조선족 아저씨가 하는 민박에 묵었다. 이 조선족 사장님은 길림이 고향으로 젊은 시절에는 러시아와 중국을 왕래하면서 모피 등의 보따리 행상을 했다고 한다.


러시아어에 익숙해지고 돈을 모으면서 부인과 함께 상트에서 숙박업소를 차렸다. 개인택시도 하는데, 심지어는 모스크바에다가 민박집 하나를 더 차렸다. 때문에 본인은 모스크바와 상트 사이를 아주 바쁘게 왕래하며 살고 있었다.


이 아저씨도 한인 민박 사장들과 다름없이 잇속은 밝은 양반이다. 그래도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는 편이었다. 내가 향후 행선지를 얘기하자 상트에서 핀란드의 헬싱키로 가는 기차표와 벨라루스의 민스크에서 모스크바로 다시 돌아가는 기차표 예매를, 우정 여행 사무소로 데리고 가서 도와줬다.


결국 모스크바로 다시 갔을 때 우리는 이 아저씨네 민박집으로 숙소를 바꿨다. 아마 조선족 아저씨도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져보고 도와준 것이리라.


어쨌든 이 조선족 아저씨는 장사도 잘 하고 나로서도 불편할 일은 전혀 없었지만, 한편으론 자기주장도 강하고 직선적인 성격이라 한국서 온 손님들과 더러 충돌하기도 했다.


아저씨는 정치 얘기를 심심찮게 꺼내, 민박집에 머무는 다른 한국인 아저씨들과 언쟁을 자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아저씨의 홈그라운드인지라 한국인 손님들은 못마땅하지만 참는 분위기였다.


가령 우리는 독재자로 알고 있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두둔할 뿐만 아니라, 푸틴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서방 언론의 왜곡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고, 오히려 푸틴은 러시아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러시아 사람들을 스킨헤드니 러시아 마피아니 해서 부정적으로 보는데, 자기가 사업하면서 사귄 러시아 사람들은 겉보기에 뚱해서 그렇지 아주 신의 있는 사람들이라고 칭찬을 했다.


아마도 조선족 아저씨의 고국인 중국이나 러시아가 공히 사회주의 국가였는지라 일종의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네프스키.jpg 상트의 중심가, 네프스키 대로


그러거나 말거나 조선족 아저씨가 잘 도와줘서 삼, 사일 간 상트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핀란드의 헬싱키로 가게 됐다. 아침 일찌감치 핀란드 역으로 나섰는데, 전에 얘기했듯이 러시아의 역 이름은 종착지가 역 이름인지라 역은 상트에 있지만 이름은 핀란드역이다.(러시아 말로는 ‘핀스키 보그잘’이다.)


핀란드 역은 혁명가 레닌이 제정 러시아의 차르에 쫓겨 핀란드 또는 서유럽 등으로 망명하거나,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게 됐을 때 거쳐 갔던 유서 깊은 역이다.


아닌 게 아니라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가 위대한 도시이며 훨씬 볼거리가 많은 유명 관광지임에도, 우리는 이 역을 통해 핀란드와 같은 진짜 유럽의 나라로 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막상 안심도 되고 설레기조차 했다.


헬싱키로 가는 기차는 ‘알레그로’라는 이름의 기차인데, <안나 카레니나>의 여주인공이 자살한 상트 역에서나 볼 것 같은 러시아의 구식 기차들과는 달리, 겉모습부터 열차 내부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모던하고 산뜻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핀란드 사이의 국경을 넘으면서, 경직된 표정의 러시아 승무원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상냥한 핀란드 승무원들로 바뀌니 기분마저 유쾌해졌다. 심지어는 우리 옆 자리에 앉은 러시아 아저씨가 열차의 구내 카페에서 사온 샌드위치가 세련되고 맛있게 보여 우리도 이를 쫓아 사먹었다.


네바와 아저씨.jpg 상트의 네바강(좌), 기차에서 만난 '삼숭' 아저씨


그 러시아 아저씨는, 우리 가족들이 기차를 탈 때부터 계속 힐끗 힐끗 보고 있더니만 급기야는 우리를 보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때부터 그 아저씨의 왕수다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는 상트에 있는 ‘OK 비즈니스 그룹’이란 회사의 무역 법률 담당 일을 맡아 한다는데, 자신이 열차 내에서 사용하던 노트북과 모바일 폰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모두 “삼숭” 것이라며 삼성 제품에 대한 폭풍 칭찬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는 애플도 별 볼일 없는 제품이라고 말하면서, 예전에는 핀란드의 노키아 모바일 폰을 썼는데 삼성에 비하면 아주 형편없다며 노키아를 팽개치는 시늉까지 냈다. ‘아 이 양반 왜 이렇게 오버를 할까?’ 싶으면서도, 어쨌든 우리로서는 뿌듯했다.


불과 10 여 년 전인 2001년 미국 유타로 안식년을 갔을 때, 우리가 다니던 교회의 미국인 목사 집에 갔더니 그 집에 삼성 텔레비전이 놓여 있어 반가워 이게 우리나라 제품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러자 그 목사가 자기는 그게 어느 나라 제품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그냥 가장 싸서 사온 것이라고 얘기해줬다. 금석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헬싱키.jpg 발트 삼국으로 가는 헬싱키 항구


한편 ‘삼숭’ 아저씨는 우리가 헬싱키의 숙소를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삼성 노트북의 위력(정확히 말하면 그 아저씨의 인터넷 검색 실력)을 보여주겠다면서 노트북을 두들겨 대더니 헬싱키 시내의 호텔을 즉시로 예약해줬다.


너무도 과도한 친절에 혹시 ‘러시아 마피아’ 아니면 ‘호텔 삐끼’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의심까지 해봤다. 우리는 헬싱키 역에 도착해서 고맙다는 작별 인사를 하고 그와 빨리 헤어지려 했는데, 우리를 역 근처이기는 했지만 호텔까지 데리고 가서 예약된 것을 확인한 후, 그때서야 멋쩍은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 호텔은 가격도 괜찮았고 우리가 러시아와 발트 삼국, 벨라루스를 여행하면서 묵은 숙소 중 가장 좋은 데였다. 생면부지의 러시아 아저씨한테 도움이라면 도움을 받은 셈이다.


이듬해 딸애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교환학생으로 가게 됐다. 나는, 아니면 그만이지만 기회가 되면 그를 만나 전해주라고 간단한 민속 공예품을 선물로 마련했다. 이후 딸은 친구를 데리고 함께 나가 삼숭 아저씨를 만났는데 상트의 아주 럭셔리한 식당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핀란드로 여행하며 만난 조선족 아저씨와 삼숭 아저씨 둘 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나이로 미뤄볼 때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지낸 셈인데, 그들이 장사하는 솜씨들을 보면 아주 자본주의 마인드로 충만해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시정 사회의 닳고 닳은 장사꾼들과는 달리 투박해 보일지언정 나름 신의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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