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성고공 건축과를 다녔던 작가 이상은 건축과 재학 당시 형무소 견학을 갔다 온 적이 있었나 보다. 건축과 학생이 무슨 형무소 견학인가 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는 형무소 견학이 아니라 수인들이 노역을 하는 형무소 내 벽돌 공장을 견학하러 간 것이었다.
이를테면 건축 재료인 벽돌을 제조하는 현장에 견학을 간 것인데 그곳이 형무소 안이다 보니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형리는 견학에 앞서 몇 가지 점을 주의해달라고 당부하는데 그중 한 가지가 죄수들의 얼굴을 너무 차근차근히 들여다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상은 벽돌 제조에는 추호의 흥미도 없었고 죄수들의 생활과 동정의 자태를 볼 수 있다는데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적토 색 복장을 입고 깃에다 번호 표찰을 붙인 그들의 모양을 적극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이러한 이상에게 끝없는 증오의 시선을 던져, 이상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서 결국에는 너무나도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들을 차마 바로 쳐다볼 재조가 없었다.
죄수들이 자기의 치욕적 생활의 내면을, 혹 치욕이라고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결코 남에게 떠벌려 자랑할 것이 못 되는 자기 생활의 내면을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막부득이 ‘구경’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누구도 싫어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상은 형무소 죄수들은 자기가 본 그대로 얘기하자면, 의외로 활발하게 즐거운 듯이 일하고 있었다. 다만 그러면서도 남의 어떤 눈도 싫어하는 까닭은 자신들이 대등한 지위를 떠나 타인에게 연민, 모멸, 동정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은 죄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구경’은 절대로 금지해야 할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소록도 다녀온 이의 입을 빌려, 나환자들끼리는 서로 즐겁고 때론 연애까지도 한다지만, 밖에서 온 이들은 아무리 자비스러운 사람일지라도 무한한 증오의 눈초리를 보낸다는 말을 덧붙인다.
2.
재직 당시 나는 우리 학교가 소재한 지역의 인문학 대중 교양 강좌에 강사로 참가한 적이 있다. 그중 교도소 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가 있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음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와는 색다른 체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호기심도 났었다.
당시 다른 대학서도 이러한 식의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다. 개중에 어떤 교수들은 노숙자, 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참여했는데, 이들 수강생들이 예상외로 좋은, 심지어 감동적인 반응을 보여 나름 보람을 느꼈다고 쓴 글을 보기도 했다.
화사한 꽃나무가 가득한 교도소 마당과는 대조적으로, 몇 겹의 철창문을 거쳐 들어가게 돼있는 교도소 안은 역시 기분이 안 좋은 곳이었다. 가지고 있던 휴대폰과 신분증을 보관함에 넣고 혼자 힘으로는 쉽게 돌아 나오지 못할 법한 복잡한 통로를 교도관을 쫓아 들어갔다.
일단 강의에 참석한 수인들에게 실망했던 것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강의를 들으러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강좌에 참여하여 상점을 받아서 그동안 교도소 생활에서 받은 벌점을 상쇄하려고 반강제적으로 참석했다는 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선을 다해 강의를 하려 했으나 그게 쉽지 않았다. 어떤 이는 정신 줄을 놓고 앉았고, 어떤 이는 날보고 무슨 개소리 수작이냐는 표정이었다. 간혹 듣는 척하는 이도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는 여기 있는 이들과는 다른 부류의 인간임을 과시하려는 것 같았다.
난 수인들을 특별한 이들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다 티가 나 보였나 보다. 강의는 엉망진창이었고 빨리 학교로 돌아가 나의 사랑하는 학생들이나 만나고 싶었다. 그나마 하품을 하면서 듣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은 수인들을 감독하기 위해 배석한 교도관 정도였다.
그날 나를 돕기 위해 같이 참석했던 조교는 실망하는 나에게 “선생님 강의는 그나마 집중해서 들었던 편”이라고 위로를 해주는데, 이거야 원, 그게 집중하는 태도라면 도대체 딴 강의에서는 어떻게들 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들에게 감동은커녕 인문학이란 저리도 한심한 것인가라는 인상만 줬다는 생각에 착잡했다. 나는 그날 밤 잠자리서 가위에 눌리기까지 했다. 그간 논문이나 책으로 배운 지식과 식견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생각하니 꽤 쓸쓸한 기분이었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