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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속 출산의 몇 장면

by 양문규

1.

임신과 출산은 여성만이 경험하는 고유의 것이다. 한국문학사에서 이러한 경험을 최초로 그려낸 이가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모(母)된 감상기」(1923년)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시의 형식을 빌려 출산의 고통을 그렸다.


시의 형식임에도 내용이 제법 길어 여기서 이를 다 인용하기는 어렵다. “아프데 아파/ 참 아파요 진정 / 과연 아프데”로 시작되는 이 시는 출산의 고통을 갖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원해 표현해낸다.


“푹푹 쑤신다 할까”, “씨리 씨리다 할까”, “딱딱 걸린다 할까”, “쿡쿡 찌른다 할까”, “따끔따끔 꼬집는다 할까”, “찌르르 저리다 할까”, “깜짝깜짝 따갑다 할까”라고 그 아픔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보지만, 사실 이 어느 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한다.


“박박 뼈를 긁는 듯”, “쫙쫙 살을 찢는 듯”, “빠짝 빠짝 힘줄을 옥죄는 듯”, “쪽쪽 핏줄을 뽑아내는 듯”, “살금살금 살점을 저미는 듯”, “도끼로 머리를 바수는 듯”이라고도 표현해보지만 사실 이 또한 정확한 게 아니니, 그 고통을 이루 다 표현해낼 길이 없다고 한다.


“금세 목숨이 끊일 듯이나 그렇게 심히 아프다가”, “흐리던 날 햇빛 나듯 반짝 정신 상쾌하며, 언제 나 아팠던 듯, 무어라 그렇게 양념 가하는지 맛있게도 아프다”라고 표현한다. 결국 옆에 있던 남편이 “참으시오”하고 말하자, “이 놈아 듣기 싫다”라고 악을 쓰고 통곡한다.


여성은 임신 경험이 아니더라도 온몸이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는 듯싶은 생리를 경험한다. 남성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이러한 여성 고유의 경험을 문학이라는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적어도 이런 점에서만도 나혜석 문학은 상당히 선진적이다.


2.

1930년대 등장한 일련의 여성작가들은, 나혜석과는 달리 무산계급 여성들의 삶을 그린다. 강경애의 「소금」(1934년)은 중국 간도 지방으로 이주해 중국인 지주 밑에서 소작 일을 하며 살아간 ‘봉염 어미’라는 여인의 수난을 그린 이야기다.


그녀의 남편은 중국인 지주에 협력했다고 해 공산당 총에 죽임을 당한다. 반면 아들은 공산당에 가담했다가 일제에 의해 총살된다. 과부가 된 봉염 어미는 이후 중국인 지주에게 겁탈을 당하고 임신한 상태에서 딸 봉염을 데리고 쫓겨나 남의 집 헛간을 찾아서 출산을 한다.


스스로 해산을 하느라 헛간은 피비린내를 품은 역한 냄새로 가득 찬다. 산모는 미역국 생각이 간절한 끝에 헛간에 쌓인 파단을 발견한다. 파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침이 턱 밑으로 흘러내리자 얼른 손으로 침을 몰아넣는다. 침이라도 목구멍으로 삼켜야 살 것 같기 때문이었다.


봉염 어미는 출산하고 나면 아이를 얼른 죽여서 해란강에 띄워 내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비록 원수의 애를 낳지만 강렬한 모성애를 느끼게 된다. 이후 봉염 어미는 애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젖어미(유모) 일을 하나, 애들을 돌보지 못해 그들 모두 염병에 걸려 죽는다.


애를 잃고 봉염 어미는 유모 자리에도 쫓겨나나 젖 먹여 키운 남의 새끼조차 못내 그리워하며 서러워한다. 모성은 비단 자기가 낳은 자식만이 아니라 기른 자식에까지 확대되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독자로 하여금 모성의 다각적 면모를 생각해보게 한다.


3.

백신애의 「적빈」(1934년)의 늙은 어머니는 무능한 두 아들(술꾼과 노름꾼)과 출산을 앞둔 며느리들을 두고 있다. 먼저 출산을 하게 된 벙어리인 큰 며느리에게, 늙은 시어머니는 해산 구완을 하러 급히 불려 간다.


시어머니는 기운이 진하여 힘을 주지 못하는 며느리에게 물 한 바가지를 솥에 붓고 장 찌꺼기를 조금 부어 김이 나게 끓여서 한 그릇을 먹인다. 벙어리 며느리는 팔을 휘저으며 두 눈이 발칵 뒤집혀져 그 물을 벌떡벌떡 마시고 난 후 “아버버…어버버…” 하며 곤두박질을 친다.


시어미가 재치 있게 며느리의 배를 누르며 연방 들여다보며 하는 사이에 철떡 하는 소리와 함께 새빨간 고기 덩어리가 방바닥에 내뿌리듯 떨어진다. 시어머니는 탯줄을 거머쥐고 입으로 가져가나 뿌리만 남은 이빨로는 어림도 없자, 대신 아들이 어금니로 석둑 탯줄을 끊는다.


가난한 어머니는 자신이 입고 온 몽당치마를 벗어 소중하다는 듯이 아기를 싼다. 며느리에게 밥을 해먹이고 차마 아기를 싸놓은 치마를 벗기지 못하여 어머니는 속옷 바람으로 어둡기를 기다려서 며느리 먹일 보리쌀을 가지러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몹시 뒤가 마려워 잠깐 발길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본 후 속옷을 헤치려다가 무엇에 놀란 듯 다시 재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사람은 똥 힘으로 사는데…’ 하는 것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들 밥 한 술 남겨 두었을 리가 없으니, 반드시 내일 아침까지 굶고 자야 할 처지이므로 지금 똥을 누워버리면 앞으로 꺼꾸러지고 말 거 같으니 배설의 대사과정마저 참는 믿지 못할 장면이 나온다. 여성의 억척스러움과 생명력은 그 끝이 어디인지…


나혜석, 강경애, 백신애.jpg 나혜석, 강경애, 백신애(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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