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의 <토끼 이야기>가 발표된 시기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던 해인 1941년이다. 이미 중일전쟁으로 식민지조선은 전시체제에 접어들지만 이제 전쟁은 확대일로를 밟고 있었다. 이 작품은 이런 시국 속에서 각박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소시민의 일상이 그려진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소설가 현이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한다. 현의 욕심은 단편 하나라도 예술적인 작품을 쓰는 것이지만, 목돈이라도 만져서 외상 밀린 것도 풀고 집안 살림에 보태 독자보다는 차라리 아내를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으려면 돈이 되는 신문소설을 써야 했다.
그러나 긴박해지는 전시체제 하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함께 고스란히 폐간이 되면서, 현은 그나마 직장과 글 쓸 신문 지면도 잃고, 이윽고는 네 번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의 한숨과 잔소리를 틈나는 대로 들어야 했다.
현은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나 저 혼자 취한다고 세상이 따라 취하는 것도 아니요, 저 혼자 나마도 언제까지나 취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송장의 주머니에서 턴 것” 같은 가슴 섬뜩한 얼마간의 퇴직금을 밑천으로 토끼를 기르기로 한다.
그러나 치솟는 사료 값을 당할 수 없어 토끼는커녕 닭을 치던 집에서까지 닭을 팔고, 닭의 우리를 허는 판이 됐다. 현은 빠르게 번식한 토끼 오십여 마리를 헐값이라도 치워야 할 판인데 가죽이면 얼마든지 일시에 처분하나, 산 것 채로는 어디서나 먹이가 문제라 길이 막혔다.
그래서 토끼 가죽을 벗겨 팔고자 하는데 현은 남자면서도 닭의 멱 하나 따본 적이 없고, 아내 역시 신혼 초에는 닭 한 마리를 사 와도 닭의 흘겨 뜬 죽은 눈이 무서워 신문지로 덮어놓고야 닭을 썰던 솜씨였다.
문과 출신 아내는 학창 시절 브라우닝의 시집을 끼고 교정 뜰서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행복을 찾았을 법도 하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식칼을 가지고 어떻게 잡았는지 토끼 가죽을 두 마리나 벗겨 놓는다. 현은 그런 아내에 콧날이 찌르르해진다.
나는 수업시간에 여기까지 설명해 놓고 시간은 남는데 더 이상 <토끼 이야기>에 대해서는 강의할 내용이 없어 난감했던 적이 있다. 궁여지책으로 여학생들에게 여러분들도 결혼 후 생활전선에 던져지면 현의 아내 같은 생활인으로 변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얘기를 덧붙인다.
대학원 시절 알았던 한 여학생이 있다. 무슨 학생회 모임이었는데 동해안으로 엠티를 왔다가 속초 아래 대포 항구의 횟집을 둘렀다. 여학생은 홍일점으로 따라왔는데 대단한 미인, 아니 청순한 미인의 얼굴인지라 남학생들이 모두들 눈독(?)을 들이고 있던 판이었다.
광어회가 나왔는데 생선 몸 대부분은 회로 뜨고 머리는 그대로 놔둬 아가미가 벌름댔다. 남학생들 몇이 젓가락으로 그 아가미를 찔러대며 이렇게 살아 있으니 얼마나 맛있을까를 지껄여댔다. 그때 여학생이 그것을 보고 눈물을 터뜨리는 바람에 모두들 당황해했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난 그녀가 나의 배우자로서 실격이라 생각했다. 저런 여린 사람이 세파를 어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녀도 <토끼 이야기>의 아내와 같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 않을 거라고 학생들에게 얘기해 줬다.
나는 닭의 눈을 가리고 닭을 썰고, 생선 아가미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비웃기는 했으나, 작고 사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생명에 대해 갖는 연민과 안쓰러워하는 마음은 삶에서 나름 소중한 자세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언젠가 역시 생선 횟집에서 여선생님들도 참석한 회식이 있었는데, 그 아가미가 벌름대는 생선회가 또다시 등장했다. 한 시인 선생님이 여선생들 눈치채지 않게 식탁의 냅킨으로 생선의 눈과 아가미를 살짝 가리는 것을 보고 그 양반의 섬세한 배려를 새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좀 멀다. 동정심도 별로 없고 공감 능력도 별로고 등등. 과연 나는 문학을 가르칠 자격이 있나?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당신의 대학 시절 은사인 피천득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이야기해 준 일화가 생각난다.
피천득 선생은 좋은 시를 많이 읽으면 사람이 착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학생들은 “과연 그럴까?” 하는 눈으로 선생을 바라보고 있으니, 선생은 학생들이 묻지도 아니했는데 당신 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만들어하셨다고 한다.
"물론 문학을 하고 좋은 글을 많이 읽은 사람 중에도 나쁜 사람이 있지. 그런데 그 나쁜 사람이 문학을 아니하고 좋은 글을 아니 읽었다면 더 나쁜 사람이 되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도 자위해 본다. 내가 이태준 소설을 비롯한 한국문학사에서 좋은 작품들을 아니 읽었더라면 그나마의 도덕적 감수성도 없었을 테고, 어떻게 보면 더 고약한 사람이 되어 더 나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