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 여행은 스위스를 여행하다가 덤으로 하게 됐다. 스위스를 바젤 공항으로 들어가 차를 빌려 융프라우를 보러 인터라켄으로 간 후, 고리(loop)를 만들어 한 바퀴 돌아 다시 바젤로 돌아오자니 스위스, 독일, 프랑스 국경들을 넘나들다가 알자스 쪽도 두르게 된 것이다.
알자스의 땅은 주인이 17번이나 바뀐 역사를 갖는다. 다 알다시피 이 지역을 두고 독일과 프랑스가 오랫동안 영토 분쟁을 일으켜 왔고 2차 세계대전 후부터 지금은 프랑스 땅이다. 이 지역은 그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1871년)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알자스 주도인 콜마르에 도착했을 때, 이 지역이 프랑스도 됐다가 독일도 됐다고 하니 ‘식자우환’이라고, 이 도시가 프랑스적인가 독일적인가 따져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프랑스 같기도 하고 독일 같기도 했다. 발자크의 소설 <사촌 퐁스>(1847년)는 이 지역을 이렇게 소개한다.
애국자이기도 했던 프랑스 작가 발자크가 이 작품을 쓰던 당시, 알자스 지역은 프랑스 땅이었다. 그는 알자스를 예찬하면서 이 지역은 프랑스의 재치와 독일의 건실함이 이룬 결합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독일 앞에서 뽐낼 수가 있다고 했다.
발자크의 말마따나 이 도시를 보니 아기자기한 수로와 집들이 어우러지고. 수로로는 관광객들을 태운 보트가 지나가는 아름다운 도시임에 틀림없다. 이곳의 건물들은 독일 것 같기도 하고 프랑스 것 같기도 한데, 실은 그 어느 쪽도 아닌 알자스 특유의 목조 가옥이라 한다.
집 벽은 알록달록한 색들로 칠해지고, 창문에는 덧창과 함께 붉은색 제라늄 등의 꽃 화분으로 장식돼있다. 어떤 집은 지붕 다락 창에까지 꽃 화분이 놓였는데, 창문턱을 빨간 꽃으로 장식한 모습이 마치 건물이 입술 화장을 한 것 같다고 해서 ‘알자스 집의 립스틱’이라 부른다.
이 지역을 독일은 독일대로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자기들 땅이라 우겼지만 정작 이 지역 주민들은 이도 저도 아닌 오랫동안 자신들만의 자치운동을 전개해왔다고도 한다. 그렇게 보면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서 고취된 애국심도 프랑스 쪽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물론 이 소설은 언어와 민족이라는, 비단 프랑스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언어를 통한 민족의 정체성 확립이란 문제를 주제로 삼는다. 그러나 당시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은 애국심을 표방했지만, 실제로 이 전쟁은 부르주아 계급의 야욕과 이해를 포장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모파상의 걸작 중편 <비곗덩어리>(1880년)는 알자스가 무대는 아니지만 1870년 프로이센(독일)과 프랑스가 벌인 전쟁이 배경이다. 모파상의 이 작품은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는 달리 풍자를 통해 애국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보불전쟁이 터지면서 프로이센 군대는 알자스의 북서쪽인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루앙으로 밀고 들어온다. 루앙의 배불뚝이 부르주아들은 프로이센 군대의 만행에 대한 소문에 떨다가 오히려 이들이 그리 잔인한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이를 기화로 다시 장사할 욕심을 불태운다.
루앙의 포도주 도매상은 전시에 미처 팔지 못했던 저질 포도주를 전량 프랑스군 병참부로 넘기고, 아직 프랑스가 점령한 인근의 도시로 가서 국가로부터 막대한 액수의 포도주 판매 대금을 챙기고자 한다.
방직공장 세 군데를 운영하는 면직물 업계의 거물 부르주아는 유사시를 대비해 60만 프랑을 영국에 송금해놓았다. “목마를 때면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 있는 배를 저장”해놓은 셈이다. 그는 사태가 악화되면 언제라도 배를 타고 영국으로 튈 판이었다.
이들 부르주아지들은 일단 프로이센 군대를 피해 마차를 불러 인근의 도시 르아브르로 피신코자 한다. 이들은 마차 안의 또 다른 승객인 노르망디 출신의 부동산 부자 귀족과 함께 애국심이 아닌 “금전을 통해 서로가 형제” 됨을 느낀다.
그런데 그 마차에는 별명이 ‘비곗덩어리’인 화류계 여인도 동승한다. 그녀는 비록 몸을 파는 여인이지만 나름 애국심에 불타 프로이센 군인에게는 절대 몸을 팔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들 부르주아지들과 함께 프로이센 군대가 없는 곳으로 역시 피신을 하는 중이었다.
마차는 중간에 프로이센 군대의 검문을 받고 비곗덩어리에 흑심을 품은 프로이센 장교에 의해 운행이 정지된다. 창녀는 자신의 소신인 애국심으로 그 장교에게 수청을 들 수 없다고 버티나, 동승한 부르주아지들은 창녀를 구슬리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고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아무 남자하고나 자는 게 매춘부의 직업 아니냐?”라고도 하고, “아가씨가 늘 베풀어 오던 호의를 또 한 번 베풀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우리를 고스란히 희생시키고 있다는 등, 급기야 마차에 동승한 수녀의 한 마디는 창녀의 저항을 풀 죽게 한다.
“프로이센 장교의 욕심 때문에 이렇게 도중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상당수의 프랑스 병사가 죽어 나갈 수도 있다”라고 하는 깔때기 모양의 수녀모를 쓴 성스러운 자매의 이 한 마디는 결국은 비곗덩어리로 하여금 프로이센 장교의 수청을 받아들이게 한다.
비곗덩어리는 이들 부르주아와 귀족들에게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부끄러웠다. 일행이 위선을 부리며 자신을 그 프로이센 장교의 품속으로 밀어 넣긴 했어도 어쨌거나 자신이 굴복했다는 사실이, 그래서 지난 하룻밤으로 인해 더럽혀졌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행세만 번듯한 저 파렴치한들에게 자신이 철저히 멸시 당함을 느꼈다. 저들은 자신을 희생물로 이용했고, 그런 다음에는 더럽혀져서 쓸모없어진 물건처럼 내쳐 버렸다. 그러니 애국심은 무슨 개뿔! 애국심! 전쟁을 겪으며 그런 것을 믿어 봤자 뒤통수나 얻어맞는 꼴이다.
마크 트웨인은 “애국자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가장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다.”라고 야유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알자스의 풍경들을 보노라면, 애국심이라는 게 적잖이 허구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