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타오르네! (파이어)

by 양문규

2015년 프라하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당시 도서관에서 나를 도와준 한국학과의 체코 여학생에게 점심을 한번 사준 적이 있다. 넉살이 좋았던 그 여학생은 식사를 맛있게 한 후 기분이 좋았는지, 나보고 서투른 한국말로 ‘교수님은 ’ 상남자'에요!’라고 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고 물으니까, 우리나라 무슨 연예인 얘기를 꺼냈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얘기인지 잘 못 알아먹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BTS의 노래 중 ‘상남자’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는데 아마도 그 노래에서 알 게 된 것 같았다.


나는 BTS를 그로부터 한참 후에야 알았던 것이다. 그들의 춤과 노래는 리드미컬하고 박력이 있으며 반항적 기운이 넘쳐흐른다. ‘상남자’도 그런 풍의 노래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곡이 ‘불타오르네(파이어)’가 아닌가 싶다.


1920년대 중반 한국 소설 곳곳에서도 BTS의 노래에서와 같이 불길이 타오른다. 이 시기 한국문학사에 특이할 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1925년 카프, 즉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단체가 결성된 것이다. 이 단체가 결성되기 이전 몇몇 문화 단체들이 이를 예비하고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단체 중 하나가 염군사(焰群社)다. 레닌을 비롯한 러시아 혁명가들이 스위스와 독일 등지로 망명했을 당시, ‘이스크라’라는 신문을 발행해 고국에 불법 유통시킨다. ‘이스크라’는 불꽃이라는 뜻인데 ‘염군’은 여기서 따온 말로 추측된다.


당시 한국의 문인들은 불의 이미지를 숭상한다. 시인 이상화(李相和)의 필명 중 하나는 불을 좋아한다는 뜻의 ‘상화(尙火)’이기도 하다. 카프가 결성되던 해, 카프 소속 작가는 아니었지만 현진건이 발표한 소설 <불>(1925년)은 아예 ‘불’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주인공 순이는 열다섯 살 밖에 안 된 나이로 농가에 시집을 온다. 어린 나이의 순이는 시어머니의 학대와 고된 노동도 버겁지만, 가장 악몽은 밤마다 남편의 육욕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 해야 되는 방은 ‘원수의 방’이다.


그날도 순이는 점심밥을 이고 논으로 나갔다가 까무러쳐버린다. 밤에 깨보니 다시 남편을 맞이해야 할 그 방이다. 순이는 이 지긋지긋한 밤을 피할 궁리를 하던 중 부뚜막에 얹힌 성냥이 눈에 띈다. 성냥을 쥐고 “이만하면 될 일을 왜 여태껏 몰랐던가 하면서 생그레 웃는다.”


그날 밤 “그 집에는 난데없는 불이 건넌방 뒤 곁 추녀로부터 일어난다. 바람의 세력을 얻은 불길이 삽시간에 온 지붕에 번지며 훨훨 타오를 제, 그 뒷집 담 모서리에서 순이는 환한 얼굴로 기뻐 못 견디겠다는 듯이 가슴을 두근거리며 모로 뛰고 세로 뛴다.”


순이가 불을 지르고 희열에 차 뛰는 장면은, BTS가 뮤직 비디오에서 불길을 보며 열정적으로 추는 춤에 못지않을 것 같다. 같은 해 발표된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1925년)의 마지막도 방화 장면이다. 벙어리 하인 삼룡은 서서 다니는 옴두꺼비와 같이 생긴 추물이다.


주인에게는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하고 세차다.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이성과 접촉할 기회가 없던 삼룡이지만 그도 정욕을 가진 사람이다. 그것은 마치 언제 폭발이 될는지 알지 못하는 휴화산 모양으로 그의 가슴속에는 충분한 정열을 깊이 감춰 놓았다.


주인집이 돈을 주고 사 오다시피 해서 색시를 들이지만, 포악한 새신랑은 색시를 학대한다. 색시를 연모하고 동정하던 삼룡은 학대받는 색시를 구하려다 그녀와 사통 했다는 혐의를 받고 몽둥이에 살점이 묻어 나올 정도로 얻어맞고 쫓겨나 오갈 데가 없게 된다.


삼룡이 쫓겨 난 그날 느닷없는 화염이 주인집을 에워싸고 불은 마치 피 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먹는 요마의 혓바닥처럼 날름날름 집 한 채를 삽시간에 먹여 버린다. 화염 속으로 뛰어든 삼룡은 색시를 안고 지붕으로 올라간다.


색시를 내려놓을 때 삼룡은 벌써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집은 모조리 불에 타고 그는 색시 무릎에 누워 있었다. 추한 모습과 불구의 인간이지만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정의감과 이성에 대한 본능적 그리움도 불타오른 것이다.


삼룡의 울분은 불과 함께 사라졌을는지!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이 삼룡의 입 가장자리에 엷게 나타났을 뿐이다. BTS의 <MIC Drop>의 비디오 마지막 부분에 불탄 자동차들을 배경으로 숨을 고르며 부르는 작별 노래의 음조를 떠올리게 한다.


불 타오르는 소설의 피크는 카프 작가 최서해의 <홍염>(1927년)이다. 간도 난민 문서방은 소작료를 못 내 딸을 중국인 지주에 넘긴다. 병든 아내는 죽기 전 딸을 보고 싶어 하나 지주로부터 문전박대당한다. 아내가 죽은 이튿날 밤이다. 그날 밤에도 바람이 몹시 분다.


문서방은 지주의 울타리 뒤에 산같이 쌓아놓은 보릿짚더미에 가서 성냥을 긋더니 뒷산으로 올라 달린다. 화신(火神)의 붉은 혓바닥은 차디찬 별까지 녹아내릴 것 같이 하늘하늘 염염히 타오른다.


문서방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처럼 올라가는 불길을 보며, 무력하다고 믿은 자기 자신에게서 새로운 힘을 발견하고 그러한 곳에서 생의 기쁨과 충동을 발견한다. 1920년대 이런 불 타오르는 소설은 아무 데도 호소할 곳이 없는 민중들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준다.


‘불 타오르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수동적 자세로 눌려 있던 인물들이, 현실에 대해 능동적 위치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모한 개인적 반항의 한계를 가졌으나, 이들은 당대 민중의 피를 끓게 하고 행동에 나서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학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프로레슬링, 불신의 자발적 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