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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Apr 21. 2024

<쑈리 킴>과 양공주 이야기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1979)의 무대는 내 고향 인천이다. 작품 속에는 미혼모 양공주가 자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중국인 동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혼혈아 친구들도 여럿 다녔다. 학부형 회의 때는 걔들 어머니도 학교를 찾곤 했다. 


그 양부인들은 한복 입은 우리 어머니와는 달리 하이힐을 신고 고데한 머리에 짙은 마스카라를 달고 나타나 어린 내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양공주라고 비하해서 부르던 바로 그이들이었다.  


어머니 친구 중에도 양공주 출신이 있었다. 그분은 ‘왜정’ 때 어머니와 소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이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해 외가서 살았는데 어머니 얘기론 또래들에 비해 조숙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끝난 후 어머니는 양공주 숙소를 우연히 지나치다 그 친구와 재회했다.  


이후 어머니는 그 친구와 계속 왕래를 가졌다. 그 아줌마는 아주 예쁜 혼혈아 딸이 있었는데 함께 우리 집을 찾기도 했다. 그 아줌마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은 미군부대서 가져온 사탕, 초콜릿, 문방구 등 ‘미제 물건’들로 우리가 횡재하는 날이었다.   


그 아줌마는 나중에 꽤 괜찮은 미군 군무원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갔다. 본인과 딸 말고도 아줌마의 건달 오빠들도 모두 미국으로 초청해 데리고 갔다고 하는데 미국 간 이후로는 소식을 알 수가 없다. 일단 겉으로 보기엔 아줌마의 인생은 그래도 해피엔딩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전쟁 직후 발표된 1950년대 소설들에 등장하는 양공주들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소설들 대표적으로 이범선의 <오발탄>(1959) 같은 소설에서 양공주는 전쟁 직후 타락한 사회세태를 상징하는 여인들로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단 송병수의 <쑈리 킴>(1957)의 양공주는 부정적인 대상이라기보다는, 전쟁의 희생양 또는 연민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쑈리 킴’은 고아원을 탈출해 사는 어린 소년으로 전방의 미군부대 근처를 떠돌면서 양공주와 미군들 사이의 매춘을 중개하며 살아간다. 


양공주 ‘따링 누나’는, 쑈리가 싼 값에 ‘물고 오는’ 미군들과 야산 참호(땅 구덩이)에서 성 상대를 한다. 쑈리와 따링 누나는 이러한 불행한 상황에서도 서로 간 남매의 정을 키운다. 쑈리는 어린이 방송시간에 나오는 동요요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바꼭질할 때” 노래를 즐겨 듣는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쑈리는 따링 누나와 땅 구덩이 속 같은 집에서라도 함께 영원히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따링 누나’는 미군들에게 육체적으로 혹사당하고 성병에 걸리며 애를 떼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불법매춘 단속에 걸려 미군 엠피들에게 잡혀간다.


그레이스 조라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있다. 그녀는 미국 대학에서 사회학과 인류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녀는 한국 기지촌의 양공주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고 저서도 발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어머니가 다름 아닌 기지촌 양공주 출신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 지아이 사이에서 이미 남자아이를 낳은 미혼모고, 후일 부산 기지촌서 나이 많은 백인 외항선원을 만나 결혼해 미국에 와서 그레이스를 낳는다. 그레이스와 그녀의 이복오빠는 미국서 나름 성공을 했으니, 양공주 어머니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셈이다.


그레이스 조는, 양공주들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대체로 양공주를 반미(反美)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미국에 강간당한 민족의 상징”이자 동시에 “국가 안보에 봉사하는 기구”, 또는 “구원이 필요한 몸” 등의 수동적 존재로 인식해 왔다고 본다. 


그러나 그녀는 양공주들이 새로운 기회에 적극적으로 참여코자 했고 동시에 지배에 저항하려 한 점도 있는 능동적 존재임을 설명해 나간다. 아마도 양공주 출신인 자신의 엄마가 억척스럽고 적극적인 자세로 미국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에서 그런 점을 보았던 것도 같다.    


그러나 양공주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역사의 아픈 상처임에는 틀림없다. 그레이스 조의 엄마는 미국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듯싶었지만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조현병을 앓다가 죽음에 이른다. 그녀의 엄마는 벗은 몸 비슷한 것을 보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엄마에게 분유를 주면 엄마는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 전쟁 같은 맛이야!”라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전쟁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레이스 조의 엄마 얘기를 들으니, 먼 과거 우리 어머니의 양공주 친구는 미국에 가서 잘 살았는지 새삼스럽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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