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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l 19. 2019

“일생에 한 번은 프라하를 만나라”

체코 오기 전 비자 문제로 끌탕을 치고 있을 때, 하도 답답해 공부하고 있던 초급 체코어 교재의 저자에게 일면식도 없지만 이메일로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그 양반은 나름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답변을 해주면서, 자기도 이번 가을 프라하를 가니 기회가 되면 거기서 한번 만나자고 했다. 그냥 인사치레의 말이 되려니 생각했다. 체코를 가서 얼마 안 돼 프라하 한인교회에서 진짜 그 양반을 만났다. 그 양반 아니 그분은 당시 한국외국어대 체코슬로바키아어 학과에서 막 정년 퇴임하고 프라하의 동양학 연구소 초청으로 잠시 체코에 머물고 있던 김규진 교수였다. 김 교수는 당시에 이미 체코를 방문한 지 30회 이상이나 된다는데, 『일생에 한 번은 프라하를 만나라』(21세기 북스, 2013.)가 그분의 저서였다.

 

김 교수는 나를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안 돼 다짜고짜 나를 데리고 로봇(robot)이란 말을 만든 체코의 대표적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 1890~1938)가 살던 집을 수소문해서 데리고 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김 교수와 함께 질풍노도(?)와도 같은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문화여행을 시작했다. 아내도 운 좋게 그 여행에 끼게 됐는데, 나는 김 교수와의 여행을 통해 여행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일단 김 교수는 여행을 그렇게 유쾌하게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와 김 교수 - 이렇게 셋의 이상스러운 조합으로 여행을 한 것 자체가 김 교수가 얼마나 격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김 교수는 당연히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를 할 줄 아는데(이 두 언어는 90% 이상 비슷하다고 한다.), 그분은 여행 중 만나는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자체를 여행의 큰 즐거움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 내내 떠들썩하고 유쾌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각별히 즐겁게 해 준 건, 체코뿐만 아니라 수도 없는 슬로바키아 미녀들과의 만남이었다. 김 교수 말로는 체코 여자는 열 명 중 하나가 예쁜데, 그 한 명은 반드시 슬로바키아 출신이란다. 거꾸로 슬로바키아 여자는 열 명 중 한 명 꼴로 인물이 없는데 그 여자는 꼭 체코 출신이란다.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지만, 이곳 여인들은 어쨌든 저 먼 나라 동양에서 온 아저씨가 유쾌하게 자기네 말을 구사하면, 모두들 경계는커녕 대단한 호기심을 갖고 다가선다. 김 교수는 이를 놓칠세라 그 미인들과 수도 없이 사진을 찍어서 나도 덩달아 수지가 맞았다. 당시 여행 사진에는 김 교수가 찍어준 슬로바키아 미녀들과 같이 한 사진들이 많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 다소 아슬아슬한 일도 있었지만 아내가 우리들 옆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안전판 구실을 했다. 

온천마을인 뽀데브라디(Poděbrady)에 놀러 온 중년 여인들과도 김 교수는 한바탕 웃음판을 벌였다.


말이 나온 김에 얘긴데 그런 점에서 아내 역시 수지가 맞았다. 김 교수는 그곳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이번에는 거꾸로 그들에게 아내와의 사진 촬영을 권유했다. 사실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봐도 체코 남자의 외모가 여자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체코 남자들은 웬만큼만 생기면 거개가 로맨틱한 서양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훈남’ 아니면 조각미남들이다. 아내는 하다못해 그렁저렁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해다 준 바리스타에게조차 황홀해했다. 김 교수는 그렇게 수도 없이 찍은 사진들로 국내에서 전시회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편 김 교수는 어디를 가든 아무리 시간이 쫓겨도 그곳의 박물관 또는 문화공연 관람을 반드시 한다. 나는 현지어를 모르기도 해서 그런 곳을 가는 것이 돈과 시간낭비라 생각했다. 이에 반해 김 교수는 어느 곳이든 도착하면 일단 박물관이나 성당, 또는 궁전의 관람시간부터 확인하고 또 나를 위해서는 영어로 된 안내서가 있는지 알아봐 줬다. 해설사가 체코어로 설명할 때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서서 통역을 하며 보충수업을 해주기까지 했다. 


어느 날 저녁은 여행으로 꽤 피곤했음에도,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의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작품인 “티토 황제의 자비”를 관람했다. 모차르트는 말년에 비엔나에서 자신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티토 황제의 자비”니 “돈 조반니” 등의 오페라를 프라하에서 초연했었다. 어쨌든 흔히 공연되는 레퍼토리는 아니어서 김 교수가 슬로바키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제자에게 부탁해 간신히 예약하여 작정을 하고 봤다.

 

오페라가 끝난 후 브라티슬라바의 슬로바키아 국립국장 앞에서


그러나 아내는 오페라가 절정으로 갈수록 심각하게 졸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의 무교양을 꾸짖기보다는 두 남자와 같이 하는 여행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서 ‘티토의 자비’까지는 아니지만 안쓰러운 마음으로 눈감아 줬다. 김 교수는,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우리 부부는 조느라고 정신없었는데, 노트북을 꺼내 그날 보고 공부한 것을 죄다 기록해놓는 놀라운 에너지를 뿜어냈다. 내가 하는 건 여행도 아니었다.  

 

지금도 김 교수가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반갑게 외치던 “아오이! 도브리덴!(체코의 인사말이다.)”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김 교수는 슬로바키아를 여행하면서 나에게 체코 말과 슬로바키아 말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단어 몇 개를 가르쳐 줬다. 체코로 돌아와서 체코 사람들에게 이 슬로바키아 말을 쓰면 굉장히 재밌어했다. 체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냐? 하는 눈치다. 마치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김 교수를 쫓아갈 수는 없었다. 김 교수와 같이 하나의 외국어에 능통한 것이 얼마나 여행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를 흉내 낸답시고 이후 나는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여행하는 그 나라 말과 문장 몇 개는 꼭 외어가지고 갔다. 내가 경험한 한도 내에서 이에 대한 리액션은 역시나 이탈리아 아가씨들이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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