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유럽서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비용을 지출하는데 나름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그중 하나가 숙박은 호텔서 하되, 숙박비용으로 하루 8만 원 이상을 지출하지 말자는 거였다. 그러나 런던, 파리 같은 큰 도시나 유명 관광도시, 특히 노르웨이나 스위스 같이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는 이게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더러 한인 민박을 이용하기도 했다.
한인 민박에선 한국 음식이 제공되기도 하나, 우리같이 여행 중 특별히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에게 그것이 장점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곳을 가면 우리가 이제는 연장자 축에 속해, 젊은이들과 같이 있는 것이 다소 거북했다. 특히 그들과 함께 공동 세면장을 들락날락거리며 사용하는 일이 불편했다. 머리카락으로 수채가 막힌 샤워부스 등등. 하기는 우리 애들 욕실 사용하는 거 보면 대충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래서 노르웨이를 여행할 때는 민박집도 드물지만 처음으로 에어비엔비를 통해 숙소를 알아봤다. 오슬로에서 묵은 숙소는 주인과 같이 사용하는 숙소임에도 숙박비가 하루 15만 원이었다. 노르웨이 물가가 세계 2위라더니 가기 전부터 실감이 났다.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 주인은 스무 살 남짓의 동거하는 남녀 학생이었다. 말이 주인이지 이들도 세 들어 살며 돈을 아끼자는 셈평인 것 같았다. 노르웨이에선 종이 한 장의 형식도 없이 이런 동거 관계의 형태로 같이 사는 젊은 남녀가 전 인구의 25%를 넘는다더니 우리가 바로 현장을 목도한 셈이다.
사실 그들도 불편했는지 나가 있다가 새벽녘에나 돼서야 귀가했다. 다음날은 느지막한 저녁에 들어오더니 우리가 저녁해 먹은 식탁에 자기들도 밥을 차려해 먹었다. 여자애는 대학생이라는데 모델 일을 아르바이트로 한다나. 집안에 웬 패션 구두들이 그렇게 많은지. 대학을 준비 중이라는 남자애는 주인이랍시고 기타 연주도 해줬다. 우리 눈에는 그들이 그저 날라리로만 보였으나, 한 푼이라도 벌고자 자기들도 이렇게 불편을 감수하는 걸 보면 꼭 그렇게만 봐서는 안 될 듯싶었다.
숙소는 그렇게 해결했다 치더라도 노르웨이의 교통비, 외식비도 굉장했다. 대중교통인 시내버스 요금이 2015년 당시 아무리 가까운 거리일지라도 한번 타는데 6~7천 원이었다. 1일 교통권도 있으나 어쩌다 한, 두 번 타야 할 경우는 어떡해야 할지 난감했다. 식당 사정도 마찬가지다. 편의점에서 치즈 한 장 들어간 바게트를 사 먹었는데 그게 9천 원이다. 노르웨이서 연어는 먹고 가야지 하며, 노점 식당은 좀 싸지 않을까 싶어 물어보았는데 야채를 곁들인 연어 몇 조각이 4만 원이라는 말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 부부가 둘 다 원래 낭만이라는 게 없다. 이럴 때 눈 딱 감고 기분이다 하면서 외식을 할 수도 있는 건데, 내 경우 음식의 맛있는 요소 중 하나로 소위 ‘가성비’를 중요하게 꼽는다. 비싼 음식은 도대체 맛이 나지를 않는다. 게다가 아내는 여행을 가면 그곳 시장이나 슈퍼에 가서 장을 봐 숙소에서 요리하는 것을 여행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그걸 마다할 리가 전혀 없었다.
베르겐서도 역시 에어비엔비를 통해 숙소를 구했는데, 그 숙소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건물의 6층 꼭대기에 있는 다락방 집이었다. 설마 그곳에 숙소가 있으려니 짐작도 못해 승강기도 없는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한 끝에 간신히 찾았다. 주인은 열쇠를 주고 황급히 가버렸는데 왜 그랬나 싶었더니 싱크대 개수대가 막혀 있었다. 그나마 식기세척기가 있어 이를 사용하고, 개숫물은 화장실에 갖다 버리는 식으로 했다.
그래도 우리끼리만 있을 수 있는 곳이라 민박이나 유스호스텔보다는 좋았다. 아내는 이러한 숙소에 도착하면 일단 취사도구는 무엇이 있고, 또 양념 재료는 뭐가 있는지를 재빨리 스캔해 본다. 그리고 장을 보러 가서는 부엌 사정에 맞춰 식사를 구상하는 것 같았다. 마침 그 베르겐 숙소에는 오븐과 파이렉스 등이 있었다. 그날 우리 부부는 슈퍼에 가서 두 끼 정도 식사를 할 요량으로 다음과 같이 장을 보고 왔다.
“연어(7,200원), 생새우(2,000원), 토마토(2,500원), 브룩 콜리(2,500원), 태국 라면(1,700원), 우유(1,800원), 빵(1,000원), 맥주(4,000원)”
총 2만 원 남짓으로 두 끼 분의 장보기를 한 건데 메인 요리는 연어 스테이크였다. 체코는 내륙지방이라 생선다운 생선을 먹어본 기억이 없어, 오랜만에 먹는 노르웨이의 싱싱한 연어는 감동적이었다. 자연산은 아니고 양식 연어지만, 이제 대서양 연어는 북쪽 그린란드를 빼면 거의 다 양식 연어라 한다. 연어 가격은 우리 물가와 비교해도 아주 싼 거였다. 노르웨이 식료품 가격이 교통비나 숙박비에 비하면 상당히 싼 거였는데, 스위스만 해도 이렇지는 않다.
연어 스테이크는 숙소에 있던 소금과 후추, 올리브유로 연어를 양념한 후, 파이렉스에 토마토와 브룩 콜리를 함께 넣어 오븐으로 구웠다. 슈퍼마켓서 사온 태국 라면에서 감미료는 거의 빼고 생새우와 같이 끓여 수프로 대신했다. 생새우는 큰 양동이에 넣어 파는데, 모종삽 같은 걸로 퍼내 무게를 달아 파는 방식이었다. 이 신선하고 빨간 생새우는 어느 슈퍼에 가든 지천으로 있었다.
질 좋은 연어를 이렇게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건 평생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던가 싶다. 노르웨이가 아주 마음에 드는 순간이었다. 내가 요리를 즐겨서 직접 하는 이도 아니고, 또 이런 걸 사진으로 찍고 여행기에 적는 사람이 아님에도 이런 얘기를 구구히 한 것은 각자 취향이 있는 거지만 나처럼 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노르웨이에 가서 이렇게 해 먹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서다.
여행 중 유명 음식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문학평론가 ‘스티븐 고슨’이라는 이가 한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 문학에 심취해 희곡을 짓기까지 했는데, 나중에는 문학의 부도덕함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문학의 악폐를 고발했다. 그는 시인을 요리사와 비교하여 요리가 주는 즐거움은 인간의 육체를 노동에서 멀어지게 하며 지각을 정복까지 한다고 했다.
즉 가르침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즐거움에만 머물러 있게 한다는 말이다. 희극의 경우에도 병신 짓을 흉내 내 놀이의 재미에 혹하게 해서, 희극이 갖는 풍자나 비판의 근본 의도는 미약하게 된다고 했다. 고루한 도덕론자의 얘기이지만 가끔씩 생각은 해보게 된다. 절밥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던 셰프 칼럼니스트 박찬일이 “음식은 쾌락이되, 쾌락을 강조하면 교만해진다.”라고 한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