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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과 스코틀랜드, 그리고 여행자 멘델스존

by 양문규

우리 학교에 독일사를 전공하는 선생님이 언젠가 독일로 방학 때 연수를 가서, 노천에서 열린 베를린 필하모니 연주회를 보고 왔다며 감동 반 자랑 반으로 얘기를 해줬다. 그러나 나는 베를린을 여행하면서 언감생심 그런 계획을 세워보지는 못했다. 시간도 그렇고, 여유도 없고 등등. 단지 베를린이 살아보고 싶은 도시라는 생각은 들었다. 혹시라도 그곳서 살게 된다면 한 번쯤은 베를린 필 공연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보았다.

‘숲에서 만난 울울창창 독일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도 있지만 베를린 시는 전체가 삼림 속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수목이 우거진 거대한 전원도시다. 런던이나 파리도 숲이 우거지지만 파리의 숲이 밝고 경쾌하며, 런던의 숲이 정연하다면 베를린의 숲은 깊고 어둡고 신비로웠다. 그래서 차분하고 사색적이다. 나같이 음악 감상과 독서, 조깅이 취미의 전부인 사람은 지내기 적당한 도시 같이도 느껴졌다.

IMG_0112.JPG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의 프랑스 인상주의와 독일 표현주의 전시


그리고 베를린이 매력적인 건 격조 있는 문화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른바 박물관 섬을 가보니 페르가몬 박물관을 비롯해 다섯 개 대형 박물관의 다양한 전시들이 여행객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마침 구 국립미술관에서 프랑스 인상주의와 독일 표현주의 미술을 비교하는 기획 전시가 열리는 걸 보고 주저하지 않고 관람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야 익히 알지만 이들이 독일 표현주의와 어떻게 연결되고 차이가 나는지를 알아보는 흥미로운 전시였다. 파리와 베를린이 이렇게 연결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부러웠다.


그러나 나는 독일 하면 역시 음악의 나라인데 이와 관련된 일화 하나 못 만들고 가는 게 아쉬웠다. 그날은 관광객이면 누구나 갔다 오는 베를린 장벽을 보고 다시 포츠담 광장으로 돌아오기 위해 전철을 타고 오던 중이었다. 아내는 전철을 탄 김에 눈을 붙이고 다리를 쉬고 있는 판이었는데, 나는 포츠담 역 바로 앞 정거장인가에서 ‘멘델스존 바르톨디 공원 역’이라는 이름의 역을 발견했다. 눈이 번쩍 뜨인 게 그곳을 가면 멘델스존의 어떤 자취들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에서다. 멘델스존은 주로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했지만 베를린에서 대학공부를 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다리가 엄청 아파하는 아내를 끌고 우정 그곳서 내렸다.


역 바로 앞에 멘델스존 공원이 있는데, 그러나 공원 안에는 멘델스존에 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공원도 초라하고 사람도 눈에 안 띄었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 공원이 멘델스존 공원이 맞느냐 물으면서, 그런데 왜 멘델스존과 관계된 것이 아무것도 없냐니까, 그 사람은 뭔 그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이었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충무로역에 내려 이순신 장군이, 을지로 역에 가서 을지문덕 장군이 왜 없냐고 물은 격이라고나 할까? 멘델스존이고 뭐고 아무 흥미도 없던 아내에게 미안했고 나 자신도 맥이 빠졌다. 여행은 생각한 대로 되는 게 아니다


멘델스존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만났다. 스코틀랜드를 여행할 때다. 에든버러에 가니 시내 여행사에는 하일랜드 관광을 안내하는 상품들이 즐비했다. 스코틀랜드의 지형은 남쪽의 저지대와 북쪽의 고지대로 나눠지는데, 고지대(하일랜드)는 대부분 높은 산과 골짜기 그리고 호수로 이뤄져 그곳 지형이 험하기는 하나 풍광이 뛰어나 좋은 관광코스가 된다. 마침 한국인 가이드가 차량 기사를 겸해 하일랜드 관광을 해주는 여행상품이 있어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야 첫 번째 안식년을 미국의 유타에서 지냈으니 하일랜드의 장대한 풍경이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녹색 또는 연두색 대평원이 기세 좋게 검회색의 거대한 산들과 바위로 기어오르다 미처 못 이르기도 하고, 거대한 골짜기로 층을 이룬 폭포가 실 줄기처럼 흐르고 때로는 검푸른 호수들도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스위스의 느낌도 나기도 하나, 어디 스위스만 한 관광지에야 비할 수 있으랴? 그러나 옛날 유럽 사람들에게 이 풍경은 이국적이고 놀라워 보였으리라는 생각은 들었다. 1818년 영국의 시인 키츠가 스코틀랜드로 도보여행을 떠나면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메로스를 읽는 것보다 이렇게 넉 달 동안 하일랜드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더 큰 경험이 될 것이고 시에 더 가까이해줄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KakaoTalk_20150803_030516631.jpg 멘델스존, 워즈워스, 또는 키츠가 걸어갔을 법한 하일랜드의 어느 지역,


한국인 가이드의 하일랜드 관광은 하루에 약 500 킬로를 10시간 걸려 이동하는 여정이다. 우리도 피곤했지만 가이드는 심지어 운전하다 졸기까지 했다. 거의 에든버러로 다시 돌아올 즈음 가이드가 ‘퍼스의 산책로’라는 곳을 덤으로 구경시켜준다고 했다. 그곳에 연어가 뛰어오르는 폭포가 있다면서 “혹시 멘델스존이라는 음악가 아세요?”하며 지나가듯이 물어봤다. 일행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몇 명 더 있었는데 모두들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비로소 ‘아! 맞아!’ 하며,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전광석화와 같이 떠올릴 수 있었다. 멘델스존은 1829년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가이드가 데리고 간 퍼스의 산책로는 멘델스존뿐만 아니라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가 산책을 다녔던 곳이란다. 그러고 보니 에든버러 곳곳에 멘델스존 흔적이 있고 당일 여행한 하일랜드 지역에도 그가 여행하며 지나간 곳이 도처에 있었다. 갑자기 나는 그의 음악들이 떠오르면서 여행의 에너지가 마구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진즉 좀 말해주지!


그날 점심식사는 대서양에서 만(灣)으로 쑥 들어온 포르 윌리엄스의 해안가 식당에서 했다. 그때는 음식 값이 엄청 비싸다고 툴툴대면서 그중 싼 홍합요리를 시켜 먹은 것밖에 다른 건 기억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곳 해안선을 쭉 따라 나가면 멘델스존의 그 유명한 ‘핑갈의 동굴’이 있는 헤브리디스 제도의 스태파 섬과 만나게 된다.


어느덧 그 식당에서 본 잿빛 바다가 <핑갈의 동굴 서곡>의 동경과 우수에 찬 멜로디로 바뀌어 들려왔다. 북독일 지역의 밋밋한 곳에서 살았던 멘델스존은 내가 오늘 둘러본 하일랜드의 풍경을 보고 가면서 경이로움에 가득 찼으리라.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주인공 격인 비극의 ‘메리 여왕’의 대관식이 열린 스털링 성도 둘렀을 것이고, 글렌코의 장엄한 산지를 둘러보기도 하고 갑자기 대서양의 소용돌이치는 바다와 마주치기도 했을 때 그의 감흥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멘델스존은 여행 마니아였나 보다. 그의 <이태리 교향곡>은 당시 독일 지식인들이 으레 가는 여행지이지만 그 역시 이태리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곡이다. 언젠가 스위스를 여행할 때였다. 알프스의 융프라우와 연해있는 멘리헨 첨봉으로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 터미널이 있는 벵엔 마을이라는 곳을 간 적이 있다. 뜻밖에도 그곳 안내문에는 멘델스존이 이곳을 자주 여행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벵엔 마을은 멘델스존을 기리기 위해 매년 8월 한 주간 그곳 교회에서 음악행사를 연다.

나에게 멘델스존의 매력은 그의 음악이 고전적이고 종교음악과도 같은 엄숙한 일면이 있지만, 한편으론 이에서 벗어나려는 낭만적 동경과 충동이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그 낭만성은 같은 시대의 독일 음악가인 슈만, 브람스와 달리 선명한 애수를 띠어 더 좋다. 이는 멘델스존이 여러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곳에서 얻은 감흥과 향수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가 그렇고 D단조도 그런데, 한국의 작곡가 조두남은 D단조가 그리 좋았던지 <선구자>의 선율을 그 2악장 주제부에서 슬쩍 가져다 쓰기도 했다.

막상 베를린을 여행할 때는 멘델스존을 만나지 못했으나,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그와의 뜻밖의 조우는 멘델스존 음악의 매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 나의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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