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신문 여행기자가, 몇 년 전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온 얘기를 꺼내면서 그곳을 꼭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기약을 못하게 됐음을 안타까워하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자 말고도 한국 사람들이 쓴 포르투갈 여행기를 읽으면, 나 역시 그곳을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으로 쓴 글들이 많다.
포르투갈은 비단 한국 사람들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도 꽤 가고 싶어 하는 나라인 것 같다. 체코에 체류하던 시절, 프라하 지하철 광고판에 땅거미가 지는 배경 아래 대서양 바다에 발을 담고 있는 벨렘 탑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기를 가보리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내 경우 포르투갈 여행은, 며칠간 포르투와 리스본을 가본 게 전부다. 난 문학 선생치곤 감성이 좀 무딘 편이라, 두 도시가 다 그냥 덤덤했다. 바로 이웃나라임에도 지중해를 낀 스페인은 밝고 화사한데, 포르투갈은 이보다 세련되지도 않고 좀 어수선해 보이까지 했다. 항구도시인 데다가 도시도 좁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언덕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어떤 시인은 “다시 오를 길이라면, 내려가지 말자”라며 이 언덕조차도 멋을 내 읊긴 했지만 쩝~
우리는 리스본서 경관이 좋은 지역이라 해서 제법 비싼 숙소를 잡았는데, 구불구불한 언덕과 가난한 골목길을 헤매고 헤매다가 힘들게 찾아갔기에, 속아서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게다가 유럽 도시들 중에서도 이곳 도시들은 유독 돌로 된 길이 많아 언덕 또는 계단으로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애 좀 먹었다.
언덕으로 닥지닥지 붙은 집들엔 빨래들이 빽빽이 걸려 바람에 날리는데 한때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의 풍경이 그렇다. 도심 꼭대기에서 보면 색 바랜 주황색 기와를 올린 집들이 층층이 골목골목으로 무질서하게 쓸려가듯이 펼쳐있다.
리스본 길엔 구식 트램에다 옐로 캡, 스쿠터 택시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흑인과 물라토들도 많이 눈에 띄지만, 분명 유럽인인데 큼지막한 이목구비에 황갈색 피부를 가진 이들이 많고 식당에는 정어리, 대구 등의 생선 요리가 넘친다. 리스본은, 조르지 성 안내판에 쓰여 있듯, “바다를 떠가는 배 같이 흔들리는(swaying) 도시”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날 지하철이 파업이라 택시를 탔는데,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터키 여학생을 우연히 태워줬다. 그 친구는 리스본이 좋아 혼자서도 해마다 온다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알파마’ 지역의 골목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여행 갔다 온 후에야 우리 숙소의 위치가 그 골목의 꼭대기였음을 비로소 알았다. 그곳 숙소를 찾을 때, 골목에 개똥도 많고 험상궂어 보이는 유색인들이 많아 아내가 무섭다고까지 했던 그 골목이다.
그곳이 알고 보니 리스본의 대표적 명소였다. 18세기 중엽 리스본 대지진 때 유일하게 붕괴되지 않았던 지역으로 꼬불꼬불 옛 도시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한 곳인데 28번 트램이 그곳 언덕과 골목을 누빈다. 끙끙대며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골목을 휘돌아 갈 때는 주차된 차들과 부딪칠 듯 스쳐 지나간다.
리스본이나 포르투나 구릉지를 밀고 평탄하게 만드는 토목공사 없이 지형을 살려 그대로 집을 지었기에 이런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식민지 도시를 건설할 때도 이렇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이지 않는’ 가파른 언덕을 선택했다고 한다. 가보진 않았지만 브라질의 리오가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도시가 자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윤곽이 풍경과 적당히 어우러져, 도시의 느낌이 “좋은 게 좋은 거다”하는 느낌이 들게 한단다.
그것은 삶을 허례허식 같은 것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치 투박한 현실주의와도 같은 것인데,(올란다, 『브라질의 뿌리』) 베란다에 아무렇게나 내다 건 빨래들이 그렇다. 아마도 이러한 것들이, 규격과 표준화에 맞춰 세련된 발전을 지향했던 유럽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포르투갈을 찾게 하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