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
학교에서 플라나리아를 배웠다.
기억나는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아주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재생력이 좋아서 몸이 잘려도 다시 재생되며, 심지어 잘려나간 부분도 완전한 개체로 재생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잘라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자연 과학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라고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 보면 그 내면에서는 그저 악한 동심의 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심이라고 해서 항상 선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착한 일 하는 동심도 있겠지만, 거리낌 없이 던지고 부수고 때론 상대를 때리는 등의 악한 동심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악한 행위를 그래도 동심의 범주에 넣는 이유는 행위가 악할 뿐 그 속에 악의나 죄책감 같은 내면의 발동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플라나리아를 잘라보고 싶었다. 반으로 잘라서 두 개를 만들고, 또다시 각각을 잘라 네 개를 만들고 싶었다. 계속 잘라서 우리 반 친구들 수만큼 만들어서 나눠주고 싶었다. 그리고 친구들이랑 다 같이 또 잘라보고 싶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였다. 여기 고한은 맑은 개울이 많아서 상류로 올라가면 플라나리아를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서 찾기로 결심했다. 별동대를 모았다. 나 말고도 플라나리아를 찾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나는 알았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 녀석들도 플라나리아를 잘라 보고픈 욕망이 있다는 것을.
가까운 개울가를 찾아가서 열심히 돌멩이를 들췄다. 플라나리아는 보통 돌멩이에 붙어 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작은 피라미들이 많았다. 그러나 플라나리아는 없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 거머리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색깔이 비교적 옅고 머리가 삼각형으로 생긴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 찾은 녀석들은 아무리 봐도 거머리 같았다. 좀 더 상류로 올라갔다. 개울 폭이 좁아지고 수풀도 더 우거졌으며 좀 더 어두웠다. 주변이 어떻게 바뀐지도 모른 채 뒤졌다. 가재도 나오고 버들치도 나왔다. 깨끗한 물에 산다는 애들은 거의 다 찾은 것 같다. 그러나 플라나리아는 없었다.
더 높이 올라갔다. 아마도 부모님께서 아셨으면 기절초풍하셨을 것이다. 그만큼 산속 깊은 개울로 들어간 것이다. 모두가 슬슬 지쳐갈 때, 누군가 외쳤다.
"찾았다!"
처음엔 의심했다. 또 거머리겠지. 그러나 어느 정도 깊숙이 들어온 이후부터는 거머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발견한 것이 플라나리아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다가왔다. 모두들 모였다. 일단 꾸물거리는 모양새가 거머리류, 아니 플라나리아류 같았다. 아까 보던 거머리보다는 확실히 색이 옅었고 크기도 작았다. 머리는 삼각형이었나? 찾으러 나선 지 많은 시간이 지나 모두 지쳐있었고, 확실히 아까 보던 거머리랑은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플라나리아라고 믿었다. 머리가 삼각형이라고 믿었다. 그러한 믿음에 산통을 깨는 친구가 있었다.
"야, 그거 진짜 플라나리아 맞아? 아닌 것 같은데? 한 번 잘라보자."
그래! 잘라보면 된다. 맞아! 우리가 오늘 나선 이유는 플라나리아를 잘라보고 싶어서이지 않은가. 잘라보자. 자를 만한 도구가 없었다. 주변에서 납작한 돌멩이를 주어다가 큰 바위에 문질러 갈았다.
"뭉툭한 날로 뭉개버리면 많이 아플 거야. 깨끗하게 잘라줘야 다시 잘 자랄 거야."
삽시간에 돌멩이는 제법 날카로운 칼이 되었다. 두근두근, 드디어 플라나리아를, 우리가 플라나리아라고 믿는 그 녀석을 잘랐다.
두 조각으로 잘린 플라나리아는 잘린 후에도 계속 꿈틀거렸다. 자른 것 까지는 좋았다. 다만, 치기 어린 우리들은 재생의 개념을 몰랐다. 텔레비전에서 혹은 어른들 이야기에서 죽고 사는 건 어렴풋이 이해했다. 간혹 만화영화에서 부활하는 것도 보아서 알았다. 그러나 재생이 뭔지는 잘 몰랐다. 우리는 이것이 플라나리아일 것이라는 추정을 믿음으로 바꿔주는 방향으로 재생의 개념을 끼워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야, 잘랐는데도 계속 꿈틀거려! 죽지도 않고 양쪽 다 움직여! 재생했나 봐!! 플라나리아가 맞나 봐!!!' 믿음을 넘어서서 확신에 가득 찬 플라나리아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 후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믿음의 플라나리아를 갖고 오지 못한 건 확실하다. 다음날 그저 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께 플라나리아를 발견했고, 잘랐고, 재생을 목격했다고 자랑한 것만 기억난다. 나를 비롯한 별동대 친구들은 플라나리아를 발견한 아이들이 되었고,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족한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