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
문학소년이 있었더란다.
나는 비록 공학도의 길을 가고 있지만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다. 독서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나면 장르 불문하고 책을 읽으려 한다. 가끔은 어떠한 영감이 떠올라 글을 쓰거나 시를 짓기도 하지만 매번 영감이 금방 방전돼서 미완으로 그치고 만다. (기억했다가 나중에 써야지... 하다가 잊어버리기도 부지기수다.) 매끄럽게 잘 쓰인 글을 보면 글쓴이가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난해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의 시 구절을 접하게 되면 위대한 난제를 해결한 과학자를 우러러보는 마냥 감탄하게 된다. 비록 내 능력이 짧아 작품 다운 작품을 써보진 못했지만, 문학에 대한 내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지도로 학급 학생들 모두가 시, 산문 등을 배우고, 작품을 써서 어린이 신문에 제출하고 그랬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철 없이 노느라고 바빴던지라 학업에 열심히 임하진 못했지만, 어린이 신문에 내 이름 석자 한 번 올려보겠다는 오기가 생겨서 시, 산문을 열심히 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의 활기찬 부름에 달려가니 내가 쓴 시 한 편이 당당히 기제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도 월간 장원으로 선정되었다. 아버지께서 바둑 두시는 모습을 보고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그려낸 시였다. 전문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느낌을 떠올려 일부 구절을 옮기면 이러하다.
가로 줄 세로줄 악보 위에서
검정 돌 도레미
하얀 돌 파솔라
노래를 한다.
싸움을 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흰돌과 검은 돌이 싸우는 치열한 전장을 오선지 위 음계들의 노래로 여기고 쓴 시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 내가 저런 표현과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신기하기만 하다. 어쩌면 저 때가 내 문학의 전성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다 크고나서 저기에 살을 붙여 완성해보려고 있지만 아무리 해봐도 맛이 살지 않았다. 결국 미완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순수한 시각이 가져다주는 신선함과 기발함은 스스로 되새겨봐도 놀랍기 그지없다. 창작의 자세는 관념의 순수함이라는 말, 지적 노동자의 최고 자질은 공평무사함이라는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엄청난 정보의 썰물 앞에서 다양한 시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본인만의 올곧고 공평무사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문학자의 자세요 또한 우리 공학자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뜬금없지만 내가 바라는 미래 내 모습을 말해보라면, 그건 바로 문학적인 공학도가 되는 것이다.
사진: Unsplash의Aaron Bu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