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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아파트

@고한

by 무누라 Aug 22. 2023

신기하다. 신기술 덕분에 추억을 되살리는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웹지도에서 지원하는 항공뷰와 거리뷰 덕분에 어렴풋이 기억나는 고한의 모습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이내 서글프다. 30여년이 지났는데도 크게 변한 부분이 없다. 강원랜드니 하이원리조트니 하며 변한 부분도 있지만, 내가 살았던 그 부근은 지형 지물이 대동소이 하다. 일부 변한 부분은 이랬는데 저리 되었구나 유추가 가능할 정도다. 그래도 고맙다. 화면 너머의 풍경에서 쉽사리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지도를 감상하며 명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대원아파트에 가려고 한다. 물론 웹지도를 통해서 말이다. 시작은 읍내 측에서 빠져나와 북동쪽 산자락으로 가는 ‘고한9길’에서부터. 길 우측에는 가파른 산비탈이 있다. 지도에는 회색 빛 계단식 콘크리트 구조물로 잘 정비되어 있다. 예전에는 탄광에서 나온 검은 돌들을 계단식으로 쌓아 놓은 비탈이었다. 비탈에는 꾸부정한 풀나무들이 듬성듬성 처박힌 듯 자라고 있었다. 그 검은 비탈 위에서 동네 친구들과 불 피우고 쥐불놀이하며 놀았다. 가끔 혈기가 넘칠 때는 이 비탈을 올라 집으로 갔다. 울퉁불퉁한 검은 돌들이 상당한 경사를 이루며 있었지만, 꾸역꾸역 잘 도 올라갔다. 간혹 바위 틈새에서 말벌이라도 만나면 걷기에도 힘든 비탈을 뛰어올라갔다. 말벌에 쏘이면 마비가 오거나 기절할 수도 있고 아이들은 심지어 한 방에 저 세상으로 뜰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만용으로 가득한 그 발걸음들은 이제 높다란 콘크리트 아래 묻혀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비탈을 옆에 두고 걷다 보면 길은 우측으로 90도 휘어진다. 지도의 좌측으로 작은 샛길이 보인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까만 돌과 흙으로 덮인 공터가 있었다. 아지매들이 무를 심는 텃밭이 있었고 한 켠에는 잡초도 무성했던 곳이다. 공터를 가로질러 나타나는 샛길을 내려가면 고한초등학교 후문으로 갈 수 있었다. 지금은 나무가 무성한 공간으로 바뀐 모습을 항공뷰로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이곳으로 사람들이 드나들까? 동네 아이들은 가끔 이곳에서 놀까? 웹 지도 만으로는 더 확인 할 겨를이 없어 답답하다. 눈이 오면 까만 공터가 새하얗게 변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공터로 가는 샛길 반대편에는 오지랖 넓은 똥개가 사는 허름한 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듯하다.


계속 길을 따라가보니 좌측에 그리 오래되 보이지 않는, 3~4층 정도의 빌라형 건물이 보인다. 알록달록한 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고 건물 위에는 ‘새빛 어린이집’이라고 써 있다. 반갑다. 내가 다녀서 가 아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건물도 없었고 어린이집을 다닌다는 개념도 없었다. 그저 낡고 변화 없는 이 동네에도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흔적을 발견하여 반갑다. 물론 그들도 대부분 자라다 보면 나처럼 그곳을 떠나겠지. 그 옛날에는 이 부근에 아주 허름한 건물들이 있었다. 건물 옆으로는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도 있었다. 내 기억에 그 허름한 건물 중 하나는 ‘롤라장’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롤라를 대여해줬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약간은 어두 컴컴하지만 맨들맨들한 바닥의 ‘롤라장’이 있었다. ‘롤라장’과 반경 5미터 정도의 풍경은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이 위치에 있었는지 확신이 서진 않는다. 


조금 더 가면 살짝 우측으로 경사진 비탈길이 나와야 하는데, 지도에는 콘크리트 담장이 이어져 있고 그 사이에 사람 한둘이 지날 수 있는 작은 계단이 보인다. 예전에는 이 경사진 비탈을 올라서 바로 아파트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동차들도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의 넉넉한 비탈이었다. 다만 경사가 좀 있어서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는 차들이 다닐 수 없었고 아이들이 박스대기로 썰매타는 곳이 되었다. 아스팔트가 아닌 울퉁불퉁한 콘크리트로 된 비탈이어서 차로 지날 때면 털털털거리는 소음이 심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사람만이 오갈 수 있는 길로 바꿨나 보다. 그래도 겨울이면 아이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썰매를 타겠지? 그 때의 질주가 지금도 이어지기를 얄팍하게나마 빌어본다.


비탈길을 뒤로 한 채 쭉 뻗은 길을 따라 가본다. 그 끝에 고한중고등학교가 보인다. 사진으로만 봐도 길이 매끈하다. 절대 30년 묵은 길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때는 없던 길이다. 도로는 교문 앞에서 우측으로 180도 휘어서 뱀처럼 위로 올라간다. 잘 포장된 길이 어색하다. 그 때는 좌우로 나무도 우거져 있었고 비포장 길이었다. 길도 험하고 길 끝에는 무서운 중고등학교 형들이 있어서 잘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지금은 매끈하고 햇빛도 환히 비치는 길이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하여 후다닥 지나친다.


드디어 대원아파트 정문에 이른다. 그럴듯한 정문이 있는 것은 아니고 대강 아파트 단지로 근접하는 경계일 뿐이다. 아파트에 들어가기에 앞서 길 좌측에 집이 있는지 살펴본다. 없다. 새로 만든 듯한 정자만 보인다. 이 부근에 낡은 집이 있었다. 그 집 안마당에서는 순이와 복실이라는 강아지가 있었다. 녀석들은 모자지간이었는데, 가끔 가면 두 녀석 다 배가 불룩했고 금세 마당에는 조막만 한 아기 강아지들로 가득했다. 그리곤 이내 아기 강아지들은 사라지고 없었는데 아마도 그 집 아저씨가 내다 팔아버린 것 같았다. 아무튼 그 집에는 자주노는 형아가 있었고 그 형아는 부모님과 형, 누나 등등과 같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집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선 정말 믿기 힘들지만 기막힌 기억이 있다. 주말 아침에 할 일 없으면 그 집으로 갔다. 집 앞 도랑에서 고양이 세수하고 순이, 복실이랑 놀다가 스리슬쩍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시건 장치 그런 건 없었다. 방문을 쓰윽 밀고 들어가면 그 집 식구들이 나란히 이불을 깔고 자고 있었다. 그 틈에서 형아를 흔들어 깨웠다. ‘형, 놀자.’ 그러면 그 집 아주머니가 잠결에 일어나셔서 너희들 왔냐고 반겨 주시곤 했다. 이른 아침 방문을 열었을 때 포근히 감싸오던 그 집 온기가 여전히 느껴진다.


대원아파트는 아래위 2개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였다.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우리집은 위쪽 1동에 있었다. 1동에는 총 5개의 통로가 있었는데 우리 집은 4번째 7, 8호 라인이었던 것 같다. 몇 층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1층은 확실히 아니었고 2층 혹은 3층인 듯하다. 가끔 집에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을 때 통로 쪽 창문으로 나와 난간을 타고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 만행을 부릴 정도면 2, 3층이었으리라. 1동 맨 끝에는 아파트 놀이터가 있었고 놀이터 한 켠에는 샛길이 있어서 그 곳을 통해 검은 비탈길 꼭대기의 버려진 탄광 사무실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놀이터는 주차장이 되었고 샛길은 철제 울타리로 막힌 것으로 보인다. 


로드뷰를 통해 아파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1~3번째 통로 쪽은 입구 계단이 지저분하고 군데군데 깨져 있다. 외벽도 빛 바랜 누런 색이었고 통로에 호수 표시도 없다. 4~5번째 통로 쪽은 입구가 깨끗이 정비되어 있고 외벽도 주홍빛으로 깨끗하다. 통로 입구에는 대원1동이라는 표시도 잘 되어 있다. 1~6호 라인의 집들은 폐쇄된 것 같다. 다시금 둘러보니 아래쪽 2동은 외벽이 죄다 누런빛이고 심지어 입구에 커다란 탱크로리가 길을 막고 있다. 사진 찍힐 당시에 일시적으로 주차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으나 느낌상 2동은 전체가 폐쇄된 듯하다. 마지막으로 항공뷰를 보았다. 2동 전체와 1동의 1~6호 라인 옥상은 거무튀튀하고 낡은 회색 빛이고, 1동 7~10호 옥상은 빨간 슬레이트 지붕으로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다. 


모르겠다. 왜 이렇게 가슴 한 켠이 먹먹하지.






사진: UnsplashJason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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